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중국사업이 콘텐츠부터 소통의 문제까지 다양한 일들로 예상보다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
그럴수록 계속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계속 돈이 들어가는데 꾸준하게 매출이 있던 국내 도서관사업의 이번 달 매출이 저조하다.
사장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김광은 팀장을 호출했다.
“김 팀장, 이번 달 왜 이렇게 입금이 안 됐지?”
“학교에서 연락이 없는데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예상이라도 한 듯, 퉁명스럽게 바로 대답한다.
사실은 김광은 팀장은 새로 연락 오는 학교에는 자신이 백업해 둔 전자도서관을 연결하고 자신의 은행계좌로 입금을 받고 있다.
“그래? 알겠네, 나가봐.”
사장은 기분이 언짢다. 큰소리치는 김 팀장이 마음에 안 든다.
사장이 자꾸 의심하자, 이미 개인회사를 차린 김광은 팀장은 빠르게 퇴사해 버렸다.
“아뿔싸!” 사장은 김 팀장에게 당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장은 자신의 소싯적 젊은 날이 떠오른다.
대형기획사를 박차고 나오던 그날.
일을 죽어라 해도 쥐꼬리만한 월급에 발전은 없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좀비 같은 녀석들만 득실대던 그 대기업.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할수록 불안만 커지고 숨만 고갈되는 느낌, 사장은 꿈이 있었기에 더 이상 그곳에 목숨을 저당 잡힐 순 없었다.
그래서 경리부의 김재운 대리와 작당을 해서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따로 빼돌렸다.
불법이지만 교묘하게 편집하여 동화사의 기초콘텐츠로 활용하며 회사를 차렸다. 그때의 사장은 급한 마음과 욕심에 다른 방법은 보이질 않았다.
자신이 영업하던 영상콘텐츠도 자신의 회사 명의로 진행하면서 양다리를 걸치며 회사를 키워 나갔다.
불법으로 콘텐츠를 도용하고 직원을 막 부려 여럿 거치며, 악덕 사장이라 불렸던 긴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와이프를 만나 함께 회사를 운영하며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회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지금에서야, 김 실장과 황 팀장 같은 인물 덕분에 자체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지만, 정말 힘들었던 지난날들이었다.
사장은 문득문득 숨기고 싶은 젊은 때의 일들이 떠오르면, 과거가 어찌 됐건 지금은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지난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똑같이 김 팀장에게 당한 것이다.
사장은 검게 변한 심장으로, 소싯적 그때처럼 김재운 차장을 부른다. 그리곤 그때의 사장으로 돌아간다.
흥수는 두 달 전쯤 들었던 김광은 팀장의 말이 떠오른다.
‘아! 사실이었나 보군, 어쩐지.’
그 말을 지금 이야기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을 거 같아 입 다물고 있기로 한다.
‘아, 민호에게 이야기했지?’
술 마시며 넋두리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래서 단도리치고자 저녁에 민호를 보기로 했다.
“민호야, 김 팀장 소식 들었지?”
“어, 회사 나간 거야?”
“회사 차려 나간 거 누구에게 이야기했어? 영업라인두 빼돌린 거 같던데.”
“그래? 난 관심 없어서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돈도 빼돌린 거야? 이야 진짜 나쁜 사람이네!”
“너, 이야기하지 마라, 괜히 같이 의심받는다?”
“…, 아니지 이건, 말해야 하는 거 아냐?”
“이미 늦었다니깐. 지금 말해서 뭐 하냐? 이미 벌어진 일인데.”
“그래도, 너무 큰일 같아서 이건 말해야 할 거 같은데.”
“야, 이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월급만 받으면 되지?”
“뭐라고? 진심이야?”
“……”
사적인 일이 아닌 일 이야기로 둘은 처음으로 이견이 생겼다.
관심이 아닌 회사 일에서는 견해가 달랐으며, 생각이 너무 다른 둘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며 회사를 다닌 민호는 주변사람과 일상이 소중한 거고, 돈 때문에 다니는 흥수는 주변이 어찌 되건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았다.
회사를 대하는,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른 두 사람.
흥수는 자신도 숨기며 경쟁하며 치열하게 지냈고 회사생활도 그랬다.
그러나 민호는 좋아하는 일을 쫒다 보니 그 일을 하게 됐고 주변사람과도 경쟁보다는 배려하며 상호보완하며 신뢰를 쌓으며 그 안에서 그렇게 지내왔다.
민호는 흥수를 절친으로 생각했는데 자신과 생각이 너무 다름에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에라, 모르겠다. 얼른 잠이나 자자.’ 이불을 끌어올려 덮는다.
그리곤, 바로 잠드는 민호.
흥수는 민호의 생각에 반하는 말을 한 것이 자꾸 후회스럽다.
‘그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다시 되돌리고 싶은 후회감이 밀려온다.
불편한 마음을 포근한 이불로 감싸며 눈을 감아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흥수.
흥수는 그동안 이견이 있어도 민호 앞에선 무조건 따랐지만 이젠 시나브로 달라지고 있었다.
민호와 흥수는 각기 우정과 사랑이 멀어짐을 느낀다.
그 오해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다 할 수 있을까?
옳고 그름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성향에 따른 삶의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너무 다른 두 사람, 함께 할 수 없는 그들이다.
서로 다름에 매력을 느끼고, 간혹 닮았다 생각도 했지만 그건 서로 오해했을 뿐….
가끔은 그 오해를 방치함으로 인해 아니면 바람으로 인해 현실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너무 달라 오해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사랑과 우정을 걷어낸 진실을 바라보면 다름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아쉬운 마음에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싸늘한 아침이다. 겨울이 오려는지 벌써 찬바람이 불어댄다.
출근한 민호는 황 팀장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팀장님, 김광은 팀장이 퇴사하면서 학교영업권이랑 돈도 빼돌렸데요.”
“누가 그래? 장대리. 그거 헛소문이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 라며 오히려 민호에게 타박하듯 이야기한다.
황 팀장은 얼마 전, 사장이 여느 때와 다르게 화를 내며 김 팀장에 대해 말하던 모습에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로서 회사 분위기가 동요되어 불안해질까 하는 걱정에 그렇게 조치했다.
민호는 황 팀장의 뻔한 거짓말에 용기를 내어 말한 자신이 무안하다.
‘다 함께 고민하고 힘을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믿고 있던 황 팀장마저 자신의 말을 일갈하자 더욱 낙담하는 민호.
커피 잔의 커피도 어느새 싸늘히 식어 있었다.
민호는 사람들이 쉬쉬하며 뒤에서만 떠드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민호는 한때 자신이 동화사와 잘 맞는 인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흥수가 입사하고 회사는 빨강에서 파랑과 잘 융화된 보라가 아닌, 온통 흙탕물로 바뀌었다.
그 안에서 숨을 쉬려면 미꾸라지로 바뀌거나 떠나야 한다.
사람은 바뀌는 게 쉽지 않아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바뀌지 않도록 자신과 다른 이를 경계하고 험담하여 몰아내려 한다.
복잡한 문제가 아닌, 이건 생존의 원리다.
오래 머무르기 위해선 주류가 되어야 한다.
다들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뒤편에서 험담이 오가는 흙탕물이 되어가는 사이에도 민호는 어떤 말이 오가는지도 모른 체 그냥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느새 아웃사이더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 분위기도 모르며 김 팀장의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 민호는 대다수가 흥수와 같은 생각인 이곳에서는 문제덩어리가 되었고 이젠 이 곳과 어울리지 않는 건 민호였다.
언제부턴가 동료들이 자신을 피하고 험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예전 같지 않다.
이젠 흥수도 자신과 다르고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민용이가 말했던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된다던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아니라, 흥수가 날 좋아한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가 신경이 쓰인다.
친구를 힘들게 할 순 없다.
황 팀장마저 자신을 믿지 않는 거 같다.
자신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든다.
차라리 자신이 이 곳을 떠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그게 회사를 위하는 게 아닐까?’
도망이 아닌 희생이라 생각하며….
회사를 나갈 생각하며 사람들을 바라보니, 정말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남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 같고 외톨이에 왕따가 된 거 같다.
어느새, 자신의 주변에는 흥수밖에 없는 듯하다.
떠날 생각을 하니 씁쓸하고 우울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애써 사람들을 대한다.
표리부동한 그들이지만, 민호는 마지막이란 생각에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다.
그러나, 오히려 가식이라 뒤에서 떠드는 사람들….
이미 이 곳은 미꾸라지로 가득한 흙탕물이다.
문화가 바뀌었다.
민호는 갑자기 삶이 무의미해졌다.
동료를 잃은 게 아니라, 자신을 잃은 듯하다.
하늘을 보니 가슴 시린 외로움이 밀려든다.
‘이 외로움과 고립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순간에 모두를 잃은 듯한 허망함 같은 것이 몰려든다.
도무지 안정이 안 된다.
민호는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나의 생각대로 했는데 이런 허탈감은 무엇인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일까? 나의 가치관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더니, 옳고 그름은 누가 정의하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대세에 대항하면 삶은 힘들어지는 것인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휴식이 필요하다. 좀 쉬고 싶다. 나를 찾고 싶다.'
민호는 이젠 더 이상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걱정되는 몇몇 사람들, 황 팀장과 김 실장, ….
회사를 위한다 생각하며 퇴사를 결심했지만, 결국 그것조차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아직 어린 민호는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