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무지개물고기의 사랑
민호는 퇴사를 결심하고, 다시 황 팀장을 찾았다.
“팀장님, 다시 생각해 봐도 안 되겠어요.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어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요.”
“솔직히 이야기해 봐, 장 대리.”
민호는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된다.
“죄송해요! 팀장님.”
“그래, 정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밖에서 보자고.”
황정선 팀장은 소문을 들어서 사람 관계로 힘들었겠거니 짐작한다.
그에게 어떤 말이든 해주고 싶은데, 그가 말을 안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한마디 건넨다.
“장대리, 내가 좀 살아보니 남의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더라, 내가 나를 믿으면 되더라고.”
민호는 갑작스러운 말에 갸우뚱했지만, 저렇게 말해주는 황 팀장이 고맙다.
“네, 팀장님. 그간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황 팀장은 민호가 하던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믿을만한 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회사가 어려워지며 회사분위기도 많이 바뀐듯하다.
아니, 회사가 바뀌니 어려워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황 팀장은 김 실장과의 관계로 한동안 회사일에 무심한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 힘들어진 게 자신의 탓도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책임감이 느껴진다.
황 팀장에게 이 곳은 일과 사람들에 최선을 다하며 젊음과 열정을 바친 곳이기에 사랑하는 김 실장과 함께 끝까지 살리고자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장 대리가 나간다는 말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은 사람이 열심히 해 봐야지!’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누구 하나 편하거나 즐겁지 못하다.
남아있는 사람은 힘을 내어 회사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마음이 아닌, 누구는 매달려 버티고 누구는 최전선을 달린다.
잘 달릴 수 있을까?
희망퇴직자는 연말까지 다니기로 정해졌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다수를 위한 송년회 겸, 이 겨울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소수를 위한 송별회.
그렇게 연말 회식이 잡혔다.
12월 31일 금요일, 1년의 마지막 날이다.
영하의 날씨에 날이 차고 춥다.
회사업무는 일찍 정리되고 평소 자주 가는 고기 집에 대낮부터 사람들이 모였다.
떠날 사람 몇몇은 잠시 얼굴만 비추고 가기도 하고, 친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합석을 한다.
흥수와 민호는 오늘은 함께 앉아있고 그 앞에는 황정선 팀장과 김은희 실장이 자리했다.
민호는 아쉽다.
오늘이 올해 마지막 날이면서 동화사 사람들과도 마지막 날이 될 터였기에 그동안 안 좋은 일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물론 황 팀장과 흥수는 퇴사 후에도 연락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흥수는 민호와의 마지막 자리로 생각한다. 이젠 정말 이별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퇴사하면, 이쪽 바라보고 오줌도 싸지 마라.”
“하하하, 여기가 군대냐? 안 볼 것처럼 말하게. 서운하게 시리.”
“……”
아쉬움과 서운함에 잔을 연거푸 부딪치며 마신다.
이른 저녁이건만, 사람들의 얼굴이 벌써 붉어져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대부분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분위기 있는 와인 바로 자리를 옮겼다.
황정선, 김은희, 장민호, 박흥수, 윤인석, 이필화 그들은 많이 마셔서 취기도 있고 가까이 붙어않아서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다.
황 팀장과 김 실장이 바짝 붙어 앉아 서로 안주를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보고, "둘이 사귀세요?" 흥수의 입에서 거르지 않은 말들이 막 쏟아진다.
“어, 몰랐지? 호호호”
“정말요? 어떻게?”
“나도 민호를 사랑하는데…, 민호가 떠나요.”
“친군데 연락도 안 하게?”
“팀장님 도와서 열심히 회사 살려봐.”
“자, 다 같이 건배해요. 사랑해요~~ 짠!”
술 취해 진심인 흥수와 민호지만, 다들 술에 취해 다른 말들은 그냥 흘려듣고 자신들의 생각만 이야기한다.
민호는 떠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12월 32일이 있다면….
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면….
삶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러나,
1월 1일이 없다면….
새로운 시작이 없다면….
아쉬움이 없다면….
죽음이 없다면….
희망도 기쁨도 행복도 삶도 없다.
그래서, 민호는 떠난다.
휴식을 취하고 희망찬 새로운 시작을 위해.
취기로 인해 기억하지도 못할 시간이 흐르고 거의 쓰러질 상태가 됐다.
아직, 자시경인데 낮부터 시작된 긴 자리 탓에 새벽처럼 느껴진다.
민호는 본능적으로 귀가해야 함을 느끼고 가방을 들춰 메고 일어난다.
흥수가 따라나선다.
많이 마셔 취한 민호는 도로로 뛰쳐나가 손을 흔들자,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라이트를 쏴 댄다.
흥수가 민호를 도로 밖으로 잡아끈다.
“너, 미쳤어!”
“어. 흥수야. 니 맘 나도 알아.”
“택시 온다. 잡아 줄게.”
민호는 멈춰선 택시에 올라타며 큰소리로 외치 듯 흥수에게 한마디 건넨다.
“사랑해~~, 안녕!”
차문이 닫히며 택시는 쏜살같이 앞으로 나가 금세 흥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택시가 사라진 도로 끝을 한참 동안 멍하니 지켜보는 흥수.
차들이 쏘아 데는 불빛과 시끄러운 경적소리로 온통 혼잡스럽지만, 흥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잘 가라, 잘 살아~~.’
그리곤 새날을 알리는 33번의 제야의 종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진다.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대~엥, ~ ~ ~ ~ ~ ~ ~ ~ ~ ~ ~ ~ ~ ~ ~ ~ ~ ~ ~ ~ ~ ~."
※ 자시: 시간 23시 ~ 01시
감사합니다. 에필로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