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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카오 Jun 08. 2022

Talk터뷰 첫 번째,
나의 코로나 해방일지


어느덧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카카오가 

가장 보통의 모습이 담긴 프로필 속 이야기를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만들어드려요.


어쩌면 나의 어제 같기도 하고,

나의 내일이 될 것 같기도 한

평범한 누군가와 나눈 카카오, 그리고 삶의 이야기

 'Talk터뷰' 지금 시작됩니다.




간호사 송하경, '해방'의 웃음을 짓다


코로나의 종식. 길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
누군가 묵묵히 어두운 길을 밝혀주었던 덕에 우리는 덜 아프고 조금 더 힘을 내어 이 터널을 걸어왔다.

터널을 지나면 익숙한 출발선이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레이스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하다.

빛이 되어준 사람들 중 하나, 간호사 송하경을 만났다. 

간호사님, 저기요, 선생님, 언니, 이모, 그녀로 불렸을 수많은 호칭들을 잠시 뒤로 두고
사람 송하경의 프로필을 살펴보는 시간. 



“송 씨, 아니 송하경 님의 프로필이 도착했습니다. 친구 추가 하시겠습니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간호사 송하경입니다. 

 

간호사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일 시작해서 8년 차 됐어요.

 

처음 간호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드라마 <허준>을 재밌게 봤어요. 어릴 때라 정확하진 않지만, 허준이 약초를 캐서 몸에 실험하고, 약자를 도우려고 헌신하는 장면이 뜨문뜨문 기억이 나요. 그 이후로 막연히 의료진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께서 간호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추천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먼저 간호사를 제안하신 게 신기하네요.

그래서 저도 종종 선생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초등학생 때는 ‘키다리아저씨’를 통해 학용품이나 교재 같은 걸 받기도 했고요. 다른 친구들보다는 일찍 베풂이 무엇인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특히나 간호사에게 코로나는 전무후무한 미션이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 전에는 간병인과 보호자 상주 없이 간호 인력만이 환자를 케어하는 병동에 있었어요. 환자와 맨투맨 케어를 하는 건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물론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훨씬 힘들긴 했지만요.

코로나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페이스 쉴드, 장갑, 신발 등 보호구 착용이 늘었던 게 힘들었어요. 평소에 물을 자주 마시는데 식사할 때를 빼곤 물을 마실 수가 없었어요. 환자분들 외출이랑 면회가 불가능해지면서 어려운 점이 늘어나기도 했죠.

 

코로나 병동은 어땠어요?

처음에는 코로나 병동이 따로 없어서 한 층을 임시로 운영할 때 헬퍼로 근무했어요. 이후에는 코로나 병동이 생기면서 그곳에 자원해서 갔어요.

모두에게  처음이었어요. 저도 환자분들도 우리 모두가 서툴고 어려웠던
시간인데 함께 잘 이겨내서 뭉클했어요.


간호 인력이 아주 부족했다고 들었어요자원하게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전에는 간호 일에 권태를 느꼈던 것 같아요. 익숙하게 환자들을 대하고 기계처럼 일했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임시 병동에 지원을 나갔던 게 큰 환기가 됐어요. 처음 간호학과를 선택 했을 때의 마음가짐, 환자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성취감 등 초심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어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있었어요.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 더 걱정이 많이 됐었죠. 나중에는 병원 기숙사에 가서 잠시 합숙하기도 했어요. 한창 확산이 심할 때는 습관처럼 카톡 내 코로나19 현황판을 체크하면서 언제쯤 수그러질까 생각에 답답했어요.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했을  같아요.

부모님께는 코로나 병동에 자원한 일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배짱이 정말 두둑하네요?

그런 건 아니지만 (웃음)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게 제일 걱정이었거든요.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어요?

갓 스물을 넘긴 청각장애인인 남자분이 입원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가 함께 입소하면 안 되냐고 재차 말씀해주셨죠. 어머니 마음이 이해가 가서 안심시켜 드리려고 많이 노력했었어요. 

 

소통하는 데에 불편함은 없었나요?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 청각장애인이셔서 수어를 할 수 있었어요. 수어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저희  병원은 업무폰으로 환자분들과는 카톡으로 의사소통을 해서 큰 문제가 없었어요. 어린 친구여서 오히려 메신저를 더 편해하기도 했어요. (웃음)

 

업무폰은 돌아가면서 사용하시는 거죠?

네. 그래서 되게 재밌었던 게, 시간대별로 일하는 간호사가 다 다르다 보니 각자 말투랑 주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다 다르더라고요. 기본 이모티콘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각자 성격이 묻어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마 환자분들은 눈치 못 채셨겠지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응원은요?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손 편지를 써준 어린아이 환자가 생각나요. 그 작은 손으로 편지를 썼을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그 외에도 퇴원하실 때 감사하다 한마디해 주셨던 것들도 소중했어요. 카톡으로 보내주신 인사들도 전부 캡처해서 보관해뒀어요. 모두에게 처음이었어요. 저도 환자분들도 우리 모두가 서툴고 어려웠던 시간인데 함께 잘 이겨내서 뭉클했어요. 


기숙사 생활은 어땠나요?

출퇴근 시간 외에는 외출이 불가능해서 병원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을 걷는 게 너무 좋았어요. 잠깐 바람 쐬면서 배달 앱으로 엽떡을 시켜서 같은 방 쓰는 선생님들과 먹곤 했어요.

 

스트레스 해소엔 역시 매운 음식이죠.

엽떡, 치킨… (웃음) 같이 모여서 맛있는 거 시켜 먹고, 영화도 보고 재밌게 보냈어요.

 

동료들과 엄청 가까워졌겠어요.

원래는 3교대로 운영되다가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2교대를 잠시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과 저는 하루에 딱 두 번 보는데 볼 때마다 ‘힘내세요, 수고했어요’ 같은 말을 서로에게 건네곤 했죠. 함께 근무하진 않았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을 격려하는 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엔데믹을 앞둔 소감이 어때요?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문득 마스크 없는 사람들 얼굴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 새삼 반갑더라고요. 서서히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서 기뻐요. 그렇지만 독감처럼 분류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개인위생 수칙을 계속해서 잘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나요?

걸리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개인 방역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웃음) 


이 기간을 견뎌낸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간호사로서 성취감과 자긍심을 다시 알게 되어서요. 제가 이 시기처럼 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그때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이 회복되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미뤄뒀던 일이 있나요?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을 배우고 싶어요. 요즘 눈여겨본 건 실내 클라이밍인데 꼭 해보고 싶습니다. 

 

간호사 송하경의 프로필을 만들어 볼 시간이에요. 

우선 프로필 사진은 증명사진이 좋지 않을까요? 쑥스러워서 셀카는 어렵지 않을까…(웃음) 아니면 마스크 때문에 제 눈만 기억하는 분들도 많으시니까 다른 사람이 찍어준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도 좋을 것 같아요. 배경 사진에는 고마운 사람들을 올려두곤 해요. 상태 메시지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요. 아마 이번에는 퇴원하시는 환자분들이 보내주신 메시지 캡처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카카오 스토리에는 꼭! 클라이밍 타는 모습을 첫 포스트로 올리고 싶어요.




*카카오 코로나 백서 함께 보기

https://pf.kakao.com/_ZRQBh/94946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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