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제목

아마도 아무말 대잔치 2020. 3. 7. 1:55

by maybe


어떤 글을 쓰고자 할 때 제목부터 적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왜 꼭 제목을 붙이고, 주제가 있어야 하는지, 글을 쓰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쨌든 우스운 일이라고 느낀다. 글을 쓸 때 제목과 주제를 정하고 썼던 적도 많았지만, 어쩌다 보니 나와버린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익숙해져야만 유형의 인간이다. 제목과 주제를 만들어 놓고 쓰는 글은 카메라 리뷰를 하며 밥을 먹고살았던 시절 외에 딱히 내게는 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글을 쓴다고 해서 내게 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 딱히 큰 주제와 제목을 먼저 정해두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10분 전에 냉장고에서 마지막 뱅쇼를 꺼내 데웠다. 분명 한국에서 태어나서 살아온 사람인데 어쩌다 뱅쇼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갑자기 사라지게 되기도 하는 거니까. 어쨌든 나는 어느 순간부터 와인을 좋아했고, 향신료도 좋아했고, 독특한 향이 그윽하게 맡아지는 뜨끈한 뱅쇼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순간 좋은 감정과 아쉬운 감정을 함께 느낀다. 따뜻한 뱅쇼를 입에 넘기는 순간 좋으면서도 이 뱅쇼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쉬워지는 것이다. 이 뱅쇼는 결국 내 안에 들어와 내 몸을 덥히고, 소화가 되고, 결국 내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 나는 뱅쇼가 사라지는 것의 아쉬움과 함께 다른 갈증을 느낀다.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글을 써보자,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켰고, 동시에 스피커도 켰다. 블루투스가 연결이 되지 않는 스피커를 껐다 켜보기도 하고, 노트북에서 기기 검색을 다시 하기도 하고, 여러 번 시도 끝에 조금 떨어져 있는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저 내 앞에 있는 노트북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닌, 물리적인 거리가 있는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이길 바랐다. 귀로 들리는 음악이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음악이고 싶었기 때문에. 공간을 채우는 소리가 온기가 되어 느껴지는 순간. 생각해보니 저 스피커는 똑같이 생긴 수많은 스피커들 중에 하나다. 무슨 말이냐면 처음 구매하고 받았던 스피커는 블루투스를 연결했을 때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렸다.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 음을 좋아하는데, 그 스피커는 미세하게 베이스가 뭉개져서 들렸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은 아님에도 그 미세한 뭉개짐이 거슬렸고, 구매 업체에 전달하여 불량인지 체크를 받고 싶다고 하여 보냈다. 그리고 업체에서는 불량으로 확인이 되었다며 새 스피커를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처음에 받았던 애매한 불량보다는 나은, 스피커로써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소비였다. 외관도 충분히 클래식하고 예쁘고.


그녀는 내게 해부학을 권했다. 근육들의 이름들을 외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떠하냐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전부터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기도 했으나 딱히 시작하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녀에게 나는 청소 이야기를 했다. 야근을 하든, 그 어떤 바쁜 시간을 살아도 주말에 하루는 꼭 청소를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러지 않는다고. 마아아악 달렸고 열심히 치웠으면 늘어지는 구간도 있어야 사람이 살죠,라고 그녀는 또 조용히 내게 말했다. 그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내게는 그런 시기인 거라고. 하고 싶었던 것들, 하려고 했던 것들, 해야 할 것들을 부지런히 리스트업 해뒀지만, 막상 시간이 몰아치니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시도하려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비겁하다. [형용사] 비열하고 겁이 많다.

비열하다. 사람의 하는 짓이나 성품이 천하고 졸렬하다.

졸렬하다.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

사전적 의미들을 검색해 본다. 알고 있는 단어의 느낌과 실제 가지고 있는 정의는 사뭇 다른 성질인 것 같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니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부모가, 타인이 붙여준 이름이 아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붙인 명사. 스스로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정의 내리거나 불리는 것들은 어떤 기분이 들어요? 내 이름이 미란이나 란이 아닌 다른 단어로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어떤 결의 사람이 되어있을까. 나는 그 다른 이름을 좋아하고 있었을까.


흥미와 분노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아요.


내가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들 중에 하나를 꼭 버려야 한다고 하면, 그건 아마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기타가 될 것이다. 악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하지 못하고 제 생을 비루하게 끝낸, 안타까운 기타. 하필 기타를 열망하여 소유만 하는 것으로 만족한 사람에게 와서 악기로 태어나 그 삶을 오롯이 살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한 일이다. 결국 누군가에게서 부지런히 제가 가진 소리를 충실하게 우려낼 수 있었을 텐데. 삶을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꽤 많은 것들에게 갚지 못할 부채가 쌓이는 것.


뱅쇼는 이미 다 식었다. 한 모금 남았다.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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