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의 아르바이트 노동기

매일 짧은 글쓰기 - 프로 알바러였던 그때

by maybe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노동'의 의미를 지닌 독일어로부터 왔다고 한다. 그러니 '아르바이트 노동'은 마치 '역전앞'과 같은 동의어가 반복되는 겹말이었다. 하지만 좌충우돌 이것저것 몸과 맘을 부대끼며 배우고 해왔던 아르바이트 경험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아르바이트 노동기'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해왔던 일들을 순차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다양하다. 연인들을 위한 사탕과 초콜릿을 포장하는 일이 나의 첫 노동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온갖 인감 서류를 스캔하는 단순하지만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을 했고, 잠 못 드는 새벽에 홀로 찾아오는 외로운 이들에게 술친구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푸거나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팔기도 했다. 새로 나온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떠돌며 사진을 찍기도 했고, 캠코더를 들고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다. 에스프레소를 뽑거나 생크림을 만들기도 했고,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건강해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운동 플랜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때 어떻게 일했었나, 가만히 떠올려 본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스쿱을 들고 동그랗게 마는 방법을 제일 먼저 배운다. 딱 세 번의 스쿱질로 빠르고 정확하게 완성해야 하는데, 그 이상 굴리면 아이스크림이 단단해지면서 더 작아진다. 아이스크림이 가득 차 있는 냉동고에 상체를 살짝 실어 한번, 두 번, 세 번 굴리면 동그랗게 완성되는데 모양도 예쁘고, (지금은 몇 그람이 정량인지 모르겠지만) 중량도 115g 정량이었다. 출근한 첫 주는 무게와 모양을 맞추기까지 수천번의 연습을 했다.


지금처럼 카페가 그리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미국의 스벅을 접하고 컬처쇼크를 받았다던 사장님이 생각난다. 그는 커피 퀄리티에 아주 진심이었다. 예쁘게 세팅한 머리의 숨이 죽지도 않았는데, 오후 4시에 아들을 위해 차렸다던 매장으로 퇴근을 했다. 외국에서 비싸게 사고 들여왔다던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방법부터 휘핑크림을 만드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쳤다. 그러면서 만들어 놓은 제조 음료를 모두 마셔보라는 것이다. 캐러멜과 초코시럽이 잔뜩 들어가고, 크림이 가득 올라간 온갖 카페 음료를 모두 마셔보며 만들었던 그때.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도, 체중도 함께 무럭무럭 자랐다.


사람은 이토록 기억을 미화시키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몇 백개를 포장하며 손발이 꽁꽁 얼었고, 커피를 뽑다가 여러 번 손을 데거나 다치기도 했고, 매출 금액이 안 맞아서 도둑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새벽에 일을 하고 돌아와 여러 날 아침까지 꼬박 잠 못 이루기도 했고, 남들은 건강해질 수 있게 플랜을 짜주고 나는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곤하고 고단했다. 분명 그토록 고생했던 순간들이 지금은 무척 아름다워 보이는 건, 그때의 내가 요령 피우지 않고 충실하게 노동으로 돈을 벌어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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