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어

매일 짧은 글쓰기 - 마무리와 시작에는 짜장면이 있었지

by maybe



10대 때는 IMF를 겪으며 가난했고, 한부모 가정에서 조모 손에 자랐다. 부친은 망한 사업의 부채를 갚느라 제법 오랫동안 집을 떠나 살았다. 그래도 아빠는 졸업식에는 꼭 참석을 했다. 3학년 차이가 나는 동생과 동시에 졸업하던 날에 '요릿집'을 데려갔다. 말이 요릿집이지, 비싼 짜장면을 파는 식당이었다. 아빠는 짜장면과 메인 요리 몇 개를 주문했다. 아빠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졸업식에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짜장면은 7,80년대에는 무척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고, 졸업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어서 졸업하면 짜장면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짜장보다 카레를 더 좋아한다. 내 인생에서 짜장면을 내 의지나 선택으로 먹은 게 몇 번 되지 않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밀가루와 글루텐 알러지가 있고, 짜고 달고 기름진 짜장면은 먹고 나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을 일으키고는 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식 날 먹었던 짜장면은 맛있었다. 아마도 기분 탓이었겠지만,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과 아들이 졸업하던 날 아빠가 느꼈던 대견함과 뿌듯함 같은 감정을 고스란히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고생하며 일했던 회사를 퇴사하던 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던 날에는 짜장면을 먹었다.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하는 날에는 꼭 먹어줘야 한다는 아빠의 말을 떠올리며 짜장면을 챙겨 먹었다. 누군가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지만, 우리 아버지는 짜장면이 좋다고 하셨다. 아빠 덕분에 흔하디 흔한 짜장면이 내게는 제법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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