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빵
20대 때 첫 직장을 다닐 무렵, 회사로 가는 길목에 동네 작은 빵집이 있었다. 출근이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 반쯤 닫힌 셔터 사이로 불빛이 보였고,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빵 냄새가 났다. 아침에 빵집 앞을 지나갈 때면 무척 행복해졌다. 갓 구운 고소한 빵 냄새는 잔뜩 날이 서있는 날에도 금세 풀어지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면 누구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걸.
10대 시절에는 조모와 살았기 때문에 빵보다는 떡을 더 많이 먹었다. 그 영향인지 빵보다 떡을 더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주는 대로 먹을 때는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20대가 되고 직접 돈을 벌면서 음식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자 떡보다는 빵을 더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됐다. 떡도 맛있고 좋지만 빵 쪽이 더더더더더 맛있고 좋은 것이다. 밥보다 빵이나 면을 더 좋아해서 ‘빵면인간’으로 살게 된 지 오래됐다. 좋아하는 것만 먹으며 살 수는 없지만, 좋은 거라도 많이 먹어야 하지 않는가.
좋아하는 빵은 꼬숩고 슴슴한 빵. 밥도 흰쌀밥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빵도 마찬가지다. 하얀 밀가루로 만든 빵은 맛은 있지만 먹다 보면 금방 질린다. 견과류 같은 씹을 거리가 들어간 빵이나 곡물로 만든 거칠고 심심한 빵이 더 맛있다.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손으로 뚝뚝 뜯어 먹는 재미도 있고, 일단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버터나 스프레드, 잼을 발라 먹어도 다 어울린다. 거기다 샐러드나 메인 요리랑 같이 먹는 재미도 있다. 물론 이건 내 기준이다.
밀가루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된 이후로는 적당히 멀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건 좋은 거다. 가끔씩 목이 뻗뻗하게 굳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아침마다 맡았던 그때의 갓 구운 빵 냄새가 무척 그리워 진다. 출근하면 문을 열고, 퇴근 전에 문을 닫아서 정작 나는 그집 빵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빵 냄새를 맡으며 얼마나 힘을 얻었던가. 코로나 이후 지하철 역에 있던 빵집들도 거의 문을 닫고, 동네마다 있는 작은 빵집들도 사라지고 있어서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