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씀, 서사원 펴냄
아날로그 라디오 ‘리드-해’, 일곱 번째 방송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러시아어 통번역사 박정은 님이 쓰고 서사원에서 펴낸
<엄마가 없어도 매일 슬프진 않아> 입니다.
이 책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이 아빠와 동생과
따로, 또 같이 살아왔던 박정은 님의 인생이 담긴 에세이입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앞서 소개해드렸던 여섯 권의 책들과는 다른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 중 하나인 반지수 님의 인스타에서
이 책 표지를 그리셨다는 포스팅을 보고서였습니다.
마침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바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어요.
저 역시도 한 부모 가정 출신인데다가 박정은 님과 나이 차가 거의 나지 않다보니
특히 시대적 배경을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쉽게 연상할 수 있어
더욱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깊고 오랜 대화 끝에 이혼을 결정하셨고
일 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두고 저희 자매와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일종의 ‘황혼이혼’을 하신 경우였는데요,
이혼의 시기도 언니는 성인이 된 후, 저는 고등학생 때였기 때문에
정은님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아프고 어려웠던 경험은 비슷한 지점이 많았어요.
저희 집은 당시 90년대에 흔히 있었던 이혼 사유였던 폭력이나 외도가 아니었고
각자 다른 삶의 지향을 깨닫고 서로 원하는 미래를 위해
싸움 없이 나름 ‘건설적인’ 이혼을 선택하신 부모님이었고
그 과정에서 저희 자녀들도 배제 대상이 아닌 구성원으로서 함께 논의하고 결정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도 처음에는 ‘이혼’에 대한 차가운 시선 때문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아빠는 죽었다’라고 말하곤 했었어요.
그 당시에 제일 힘들었던 건, 저 자신이 부모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내 눈에는 당당하고 멋진 우리 엄마가 ‘이혼녀’라는 이유로
갑자기 주변 이웃들에게 하대당하고 소외당하는 걸 느낄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결정이 멋있고 시대를 앞서가는 과정을 거쳤음을 말하고자
사실대로 이혼과 그 이유와 과정을 밝혔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 역시 홀가분해졌고
오히려 부모님의 싸움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친구들이
남몰래 상담을 요청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 숲이 되었습니다.
박정은 님의 삶은, 어쩌면 대부분에게는 ‘참 힘들었겠다’라는 동정을 느끼게 하는
고단한 시간이자 아픔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옮겨 다녔고, 새 엄마가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고,
카자흐스탄으로 갑자기 이민을 가고,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서 혼자 살아야 했던 시간들...
하지만 정은님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한 부모 가정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매개로 이렇게 나선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은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잘 담긴 구절 중에
한 대목을 여러분께 읽어드릴게요.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다름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 처해 본 탓인지 이제 웬만한 일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라며 이해하게 된다.
계기가 무엇이었든 낯선 나라에서 유학을 했다는 건 행운이었다.
비록 형편이 넉넉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유학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새엄마와의 이별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조금은 낙후된 곳에서 시작한 생활이었지만
그 시간이 어린 내게 남겨 준 것은 참 많다.
다른 민족의 삶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새엄마와의 헤어짐은 아팠지만
위기는 그렇게 내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지금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 그것이 기회의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1차가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위로지만
그것 외에도 인생 속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따뜻한 메시지들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경제를 비롯해서 여러 이유로 답답하고 막막한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강가나 바다에서 정은님이 내 옆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이 책을 읽으시면서 가을을 맞이해보시면 어떨까요.
오늘은 한 부모 가정의 맏딸로서, 그리고 세상에 유일한 단 한 사람의 독백인
<엄마가 없어도 매일 슬프진 않아>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대체휴일이 끼면서 연휴를 맞이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좋은 책 한 권 꼭 만나시기를 바랄게요.
* 이 글은 유튜브 <Analogue Radio>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방송 대본입니다. 본 방송은 https://youtu.be/1YEIzcq5ZeA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