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 고비의 순간은?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 500가지 (스던질)

by 숨낭

스스로 고비라고 느꼈던 순간들은 대부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을 하던 때였던 것 같다. 머리가 커지고 생각이 꽤 유연해질 대로 유연해진 지금은, 그 중간에서 적당한 타협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에는 타협을 하는 방법을 몰랐고, 모르고 싶어 했다.


'사'자 직업을 바라던 부모님의 말을 기어이 거역하고 쇼호스트가 되고 싶어서 모두가 잠든 밤에 아나운서처럼 말하는 법을 검색하던 고등학생 시절이 흘러갔고,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있다가 대학생 시절 마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게 되었던 첫 회사에서 직장인이 되었던 때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쓸리고, 갉아먹히며 나약한 인간의 절정을 찍을 때 즈음 사계절을 세 번도 채 보내기 전에 회사를 뒤로하고 제주로 떠났다.


내 나이에 맞게, 주어진 환경에 맞게, 나에게 놓인 일을 최선을 다해 임무완수해야 했지만 나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더 중요했음을 그제야 받아들이고 인정했던 때였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가 무엇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내 인생에 불쑥 고비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다시 중요한 무언가를 결단 내려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부딪히고, 쓸리고, 갉아먹히지 않는 방법을 안다. 나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 고비의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 하지만 계속될 거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부쩍 안심이 된다. 인생에 큰 힌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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