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와인 버리지 말고 재활용하자
기껏 기분 내고 싶어서 와인을 샀더니 내 입에 안 맞을 때, 또는 싸길래 가성비 좋다고 생각하고 골랐는데 너무 맛이 없던 적이 있었나요? 물론 마개로 잘 막아 두었다가 요리에 써도 되지만, 그렇게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고, 특히 칠링 해둔 게 아까울 때 다른 음료나 칵테일을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와알못이던 시절, 손님 초대를 할 경우 다 같이 색깔 예쁜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싶은데, 술을 못 마시는 혹은 술에 약한 멤버가 있으면 저는 상그리아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가장 싼 진로 포도주를 사 와서 만들었죠. 상그리아는 흔히들 생각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스페인이 원조가 아니고, 카리브해나 남미에서 마시던 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14년에 유럽 연합에서 상그리아의 AOP 등록을 스페인 아니면 포르투갈에서만 할 수 있도록 정해버렸습니다. 상그리아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 (사실 불어로도 마찬가지죠) 피를 뜻하는 Sang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음료 특유의 붉은빛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그럼 저만의 상그리아 레시피를 공개할게요.
먼저 오렌지 두 개와 레몬 (혹은 라임) 1개를 준비합니다. 껍질을 벗기고 찹찹 썬 후, 레드 와인을 부어 주세요. 오렌지를 구하기 힘들면 사과도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 과일은 많을수록 좋은 거 같아요. 석류, 딸기, 복숭아 등도 넣어봤는데 다 괜찮았습니다. 상그리아를 만들려고 과일을 일부러 사시기보다는, 마침 생으로 먹기는 조금 시든 듯한 과일을 사용하시면 더 좋죠. 과일이 유기농일 경우 껍질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유기농이 아닐 경우에는 껍질을 벗겨주세요. 그리고 나중에 장식을 위해 반달 모양으로 조금 썰어서 한쪽에 남겨두세요. 한두 명 마시려고 상그리아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 테니, 같이 마실 멤버들을 생각해서 레드 와인을 한 병 다 붓거나, 3/4만 사용합니다. 마실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분들이냐 아니냐에 따라 와인 양이 달라지겠죠? 썰어둔 과일에 와인을 부어 맛이 전체적으로 잘 녹아들도록 해주세요. 잘못 고른 레드 와인이 단맛이 없을 때는 설탕을 밥숟가락으로 4숟가락 정도 부어주시고, 단맛이 있는 레드와인의 경우 맛을 봐 가며 설탕량을 조절해주세요. 이다음 오렌지 주스 한 팩 (250에서 300mL 정도) 붓고, 개인적으로 저는 체리 리큐르를 사용합니다. 없으면 Grand Marnier나 오렌지 향이 나는 다른 리큐르, 보드카, 브랜디, 화이트 럼 혹은 코냑도 괜찮습니다. 취향에 따라 바닐라 향을 첨가해도 좋습니다. 베이킹할 때 쓰는 바닐라 슈거가 있으면 설탕을 넣을 때 조금 섞어서 넣어도 좋을 거 같아요. 내용물을 잘 저은 후 랩을 씌워 서늘한 곳이나 냉장고에 보관합니다. 하룻밤 정도 묵히면 딱 좋은데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3~4시간도 괜찮아요. 마시기 30분쯤 전에 각얼음과 탄산수(없으면 그냥 생수도 무방)를 넣고 잘 섞어서 맛을 본 후 유리 피처에 담아 시원하게 드셔 보세요. 아까 반달 모양으로 조금 남겨 놓은 과일을 이때 피처에 동동 띄워 놓으면 이쁩니다.
준비물. 잘못 고른 레드 와인 한 병. 설탕 250g (가능하면 황설탕이 좋습니다), 레몬, 오렌지 두 개, 각종 향신료 (계피, 정향, 붓순나무 (별 모양처럼 생긴 것), 육두구(muscade), 생강 등이나 구하기 힘들면 계피 및 생강만으로도 충분)
볼에 설탕을 붓고, 레몬 하나와 오렌지 하나를 즙을 내어 넣은 후, 남은 오렌지 하나는 슬라이스 해서 따로 둡니다. 육두구는 좀 갈아서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넣고, 생강은 엄지손가락의 한 마디 정도를 편으로 썰어 넣습니다. 약한 불에 두고 천천히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 5분 정도 더 끓게 둔 다음 식힙니다. 아까 썰어둔 오렌지 한 조각을 잔에다 띄우고 체에 걸러 한 잔씩 서빙합니다. 설탕은 취향에 따라 가감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1/3 정도가 적당했습니다. 와인을 잘못 고른 게 아닌 경우에는 저는 보통 보르도 레드를 사용하는 편이에요.
레드와인과 탄산수 혹은 진저에일을 3:1로 섞은 후, 라즈베리나 체리 등 모양이 이쁜 베리류 와인을 띄워 마시면 됩니다. 시원하게 얼음을 섞어도 좋고요. 프랑스에서는 시럽도 많이 섞습니다. 이건 정말 따로 정량의 레시피가 있는 게 아니라서, 와인 자체로는 마시기 힘든 골칫거리 녀석이 있을 때 탄산수와 과일 및 시럽을 섞어서 드시기 좋은 칵테일이에요.
이상할 것 같다고요? 의외로 괜찮은 조합입니다. 물론 테킬라가 집에 있는 편이 좋겠죠. 잘못 고른 와인을 처리하겠다고 테킬라까지 다시 사러 나가기에는 귀찮으니까요. 하지만 마침 테킬라도 집에 있다면 시도해보세요.
준비물: 테킬라, 레드와인, 라임즙, 아가베 시럽(없으면 설탕), 자몽주스, 탄산수
테킬라와 레드와인은 각각 45mL 정도 붓고, 라임즙과 시럽은 15mL 정도 넣습니다. 자몽주스와 탄산수는 각각 30mL 정도 넣은 후, 잘 섞어서 얼음이 든 컵에 부어 시원하게 드셔 보세요.
이름이 어렵다고요? 저도 사실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스페인 남부 지방에 갔을 때 사람들이 많이 마시길래 시켜봤더니, 단순히 레드와인과 콜라를 섞은 칵테일이었어요. 비율은 1:1. 아주 쉽죠? 위의 모든 레시피가 너무 번거롭고 귀찮으시다면, 칼리모초부터 시도해보세요. 취향에 따라 콜라를 더 넣거나 와인을 더 넣어서 드셔도 됩니다. 정석으로 레시피가 따로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그냥 바닷가에서 사람들 따라 마셔본 거거든요.
+추가: 스페인 친구한테 물어보니, 딴 지 하루 이틀 된 레드와인을 냉장고에 두어 차갑게 한 후 코카콜라 오리지널과 반반 섞으면 된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1:1 비율보다는 콜라를 와인보다 조금 더 섞는 게 맛있었어요. :)
그럼 다음 편은 화이트 와인 소생술을 가지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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