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찻잔 속의 태풍! 관조하듯 따뜻하고 무심한 듯 사려 깊어 멋지다.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 귀해 안테나는 늘 한쪽을 향해 있다.
일은 아마도, 결국엔 프로 운동선수들의 그것처럼 무의식의 실현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을 늘 부담스러워하는 그이지만, 분명한 전문가의 영역에 대해 말한다.
세상의 많은 거장들, 그들이 남긴 흔적과 삶의 양식을 따라 올라가 보면 결국 업과 놀이가 묘하게 섞인 형태로 귀결된다.
모두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나는 어쩌면, 몇 번이고 죽을 수도 있을 만큼 간절할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싶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 그런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저자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제한된 자유, 글을 쓰기 위해 철저히 통제하는 일상과 반복적인 행동, 스스로의 눈, 코, 입, 손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쓸모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반바지를 입은 날엔, 긴 바지를 가방에 챙겨 다니는 그이다.
내가 없다고 남의 그림자를 주워 입는 것만큼 초라한 행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는 공공연하게 좋지 않은 음악과 고급스럽지 못한 문장이 가득해서 SNS를 안 본다고 했지.
수준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같이 등장하는 유사 전문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마에스트로의 길은 분명 외롭고 고독하지만 충분히(영원히) 가치 있다. 의미는 스스로 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꼭 성과로 연결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의미 부여와 당신의 의미 부여는 대부분 같은 값이 매겨지지 않는다.
일상에서 소명으로 겉싸개를 바꿔가며 획득한 삶의 진리 같은 것. 유행과 인식의 차이, 계급과 질서, 취향과 아집 등 시대상을 담아내는 바로미터로서 기능까지. 상업과 예술을 넘나들며 선망과 조롱, 쾌락과 유희, 자조와 오만… 내 수준의 총량은 딱 그만큼 나를 이끌기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너의 쓸모는 무엇인가?
지식의 축적, 현재의 문명은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길을 터준 선배들과 따라올 후배들을 위해 나는 이 산업에, 나아가 문화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무의식에 박혀 자연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파편화되어버린 그들의 흔적은 없는 듯, 늘 존재하며 영감의 원천을 제공한다.
철저히 일상적으로 훈련하고, 링 위에선 그동안 갈고닦은 무의식을 황홀하게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