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잘 부리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들뜬 목소리로 보여줄 게 있다며 자리에 앉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강아지를 불렀다. 방에서 뛰쳐나온 강아지는 친구 앞에서 배를 까고 드러누웠다. 강아지는 배를 만져주자 좋아했다. “뒤집어!” 한마디에 강아지는 다시 네발로 섰다. 가볍고 말랑한 공을 던지니 잽싸게 그 공을 물어왔다. 어디에 던져도 잘 찾아왔다.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왔다. 주워 오라고 하면 주워 왔고, 뒤집으라면 뒤집었다.
훈련이 잘된 강아지로 보였다.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친구는, 이렇게까지 훈련 시키느라 고생했다며 스스로 기특해했다. 친구는 강아지가 자기 말을 잘 듣는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말을 잘 들을 때마다 먹을 것을 조금씩 줬다. 시간이 갈수록 말을 더 잘 들었다. 강아지도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그래야 밥을 얻어먹어서인지 잘 따랐다. 가끔 놀러 갈 때마다 업그레이드된 된 강아지의 훈련 내용을 보여주곤 했다. 강아지를 부릴 때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친구였다.
어느 날, 풀이 죽은 친구를 만났다.
강아지가 집을 나갔다는 거다. 강아지가 밖으로 나갔는데, 나갔다가도 곧잘 찾아와서 그런가 보다 했단다. 하지만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고 울상이었다. 자기를 잘 따르던 강아지라, 자기를 좋아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 강아지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는 듯했다. 얼마 동안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그렇게 풀이 죽은 표정으로 지냈다. 밝았던 친구인데 말이다.
친구는 강아지를 잘 부렸다.
강아지는,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따랐다. 친구가 주인이고, 강아지는 종속된 존재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강아지 가출(?) 사건으로, 이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강아지가 실질적인 주인이고, 친구가 종속된 존재라는 거다. 친구는 강아지를 부린다고 여겼지만, 강아지가 없어지니 우울해했다. 이런 모습을 보니, 강아지가 오히려 친구를 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관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자기 멋대로 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걸 맞춰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했다. 친구한테 왜 그렇게까지 맞춰주는지 의아했다. 겉으로 보면, 자기 멋대로 하는 친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맞춰주는 그의 여자 친구는 종속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둘이 헤어졌는데, 누가 더 힘들어했을까?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보인 친구였다. 강아지를 잃었던 친구처럼, 한동안 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다.
진짜 주인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 말을 잘 따르거나 내 마음을 잘 챙겨주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이 내 마음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곁에 두는 방법은, 나 역시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존중하고 배려하는 거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떠나지 않도록,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