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X 퀴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이다.
문제를 듣고 ‘O’ 또는 ‘X’를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예전에 회사에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마지막 3명 정도 남았을 때 희한한 모습을 봤다. 한 사람이 가운데에 그어진 선 중간에, 선 거다. 한마디로, 한 발은 ‘O’ 한 발은 ‘X’를 선택한 거다. 이 사람의 의도는, 어느 쪽이든 맞으면 선물의 절반만 가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확신이 없으니, 선물을 받거나 못 받는 선택이 아닌, 어디든 절반이라도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참신한 생각에 감탄했지만, 결국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OX 퀴즈에서 짜릿한 순간은 언제일까?
최종 문제를 맞혔을 때일까? 해보진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과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짜릿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 다른 퀴즈에 있기도 하지만, OX 퀴즈에는 꼭 있는 순간이다. 패자부활전이다. 떨어진 사람들을 한쪽에 모이도록 한다. 게임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사회자는 쉬어갈 겸 해서 패자부활전을 외친다. 쭈그려있던 탈락자들은 환호하며 앞으로 나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번에 떨어지면 더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이 있으면, 희망을 품게 된다.
탈락해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유가 그렇다. 패자부활전이 있으니, 거기에 희망을 두는 거다.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품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와도 기회로 여기지 않는다. 귀찮게 하는 순서일 뿐이다. 패자부활전이라고 해도,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사람이 그렇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자포자기하고 있으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작아진다. 하느님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열어주신다는 말이 있다. 다른 문이 열렸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새롭게 열린 문을 발견할 수 있을까?
희망을 품고 기다리면, 다시 살아낼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버티면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듯이, 버티고 있어야 기회가 온다. 버틴다는 건 희망을 품고 있다는 말과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지금의 어려움이 있지만, 버티고 있으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기대하는 거다. 이 말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작년을 보내고 올해를 절반 가까이 보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 말의 의미를 마음으로 깨닫고 있다. 정말 힘든 시기를 어떻게든 버티고 잘 넘어오니,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제2의 삶이라는 표현이 있다.
정년 퇴임쯤의 나이를 맞이하신 분들이 쓰는 표현이었다. 지금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평소 하고 싶던 일을 하는 분들이 그렇다. 글을 쓰거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 급속하게 변하는 환경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삶과 다른 삶을 살고자 결심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마음에 품고만 있던 삶을 실행한다. 제1의 삶을 마칠 때는 마침표가 되는 것을, 제2의 삶을 시작하면서 쉼표로 바뀌게 된다.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는 삶.
멋지지 않은가? 주저앉고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삶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상 여정을 마칠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삶을 살면 어떻겠냐는 거다. 멈추지 않는 삶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삶 말이다. 희망을 품어야 한다.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계속 나아가는 삶으로,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어나가야 한다. 지상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 잘 보냈다고 말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