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무너졌다.
언제부턴가 몸이 무거워졌다. 새벽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춰져서 정착되고 있고, 운동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있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환절기 증상이라 여겼다. 이 시기가 길어지면서, 환절기 증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운동할 시간적 여력이 없게 되기도 했다. 새벽에 하지 못하니, 퇴근 후에 하려고 했는데 다른 일정이 생겼다. 다른 일정이 생기지 않으면, 피곤한 몸으로 도저히 운동할 의지가 살아나지 않았다. 몸이 쳐지니 책을 읽거나 그밖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금방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두어 달 된 듯하다.
일어나고자 하는 시간에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운동도 띄엄띄엄하게 된 기간 말이다. 책 읽는 것도 시큰둥하고 그렇다. 쉬는 날에도 일어나는 시간이 거의 규칙적이었는데, 그것도 무너졌다. 뭉그적거리다, 겨우 일어난다. 그래도 다행이랄까? 매일 글 쓰는 루틴은 무너지지 않았다. 매일 글쓰기는, 철옹성 같은 느낌이다. 먹고 자는 것처럼,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삶의 중심에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그냥 나아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려 들어갔다. 의지가 아닌 본능이 이끄는 곳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는데 몸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이렇게 해야 하잖아!’라고 의지가 말해도, 본능은 듣질 않는다. ‘조금만 더…’, ‘내일부터…’ 등등의 말로, 지금 순간을 넘겼다. 의지는 그의 말을 들었다. ‘이번만이야!’ 이번은, 반복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 의지에 묻지 말고, 그냥 해야 한다.’ 잊고 있었다. 의지에 물으면, 행동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의지는 물어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해야 일어난다.
생각해 봤다.
‘무엇이 나의 내적 동기를 주저앉게 했을까?’, ‘무엇이 의지를 잠재우게 했을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넣은 것들이 그랬다. 많이는 아니지만 자주 하는 음주, 무심코 보게 되는 야구 중계, 한 번 보면 계속 보게 되는 짧은 영상 등이 그렇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내 안에 넣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잦은 횟수가 나쁘다는 거다. 한두 번이 두세 번이 되고 두세 번이 매일 되면 어떤가?
그냥 관성에 의해 따라간다.
별로 내키지 않아도, 그냥 하게 된다. 실제 그랬다. 그렇게 내키지 않았는데, 그냥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었다.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는 거다. 좋은 습관은 들이기 어렵고 끊기기는 쉽다. 나쁜 습관은 들이기 쉽고 끊기가 어렵다.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는 다 알고 있다. 어쩌다가는 괜찮지만, 계속되면서 하고자 하는 다른 것을 방해하는 것이 나쁜 습관이다. 음식이 그렇고 활동이 그렇다. 생각도 그렇다.
내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삶의 방식은,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가리킨다. 어디로 향할지는, 지금 내 삶의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삶의 방식에 만족하는가?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은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 좋아!”라고 하는가? 아니면, “이건 아니지 않아?”라고 반문하는가? 두 대답으로 지금 삶의 방식을 평가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대답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