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다.
이런 날, 많은 스승님께 인사드리면 좋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졸업하고 바로 찾아뵙고 해야 했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러지 못했다. 한 해 두 해를 넘기다 보니, 찾아뵙고 싶어도 서먹한 마음에 미루고 미루게 됐다. 그래서 스승의 날만 되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때 좀 연락도 드리고 찾아뵙고 할걸’ 좋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께는, 늘 이날만 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몇몇 분께 인사드리고 있다. 학교 선생님은 아니고, 사회에서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다. 이제라도, 좋은 스승님들과의 인연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좋은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에 좋은 것을 심어주는 분이, 좋은 스승이라 생각한다. 작은 것이라도 깨달음을 주는 분이랄까? 스승의 범위를 확장하면 좋겠다. 단순히 무언가를 가르쳐주신 분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일깨워주는 분을 스승이라고 해야 한다. 세상에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라고 하신, 어떤 분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마주할 수 있다. 좋은 모습에서도 배울 수 있고, 안 좋은 모습에서도 배울 수 있다. 가르침이 항상 좋은 모습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다.
같은 가르침이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본질은 버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뽑아서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냐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을 인용하면, 달을 가르치는데 손가락만 배워가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전하고자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배워가는 거다. 이런 모습이 과연, 스승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무협 영화에서 이런 모습이 나온다.
무술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다. 이 스승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다. 둘 다, 무술 실력은 출중하다. 무술 실력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 마음이다. 인성이라고 해야 할까? 한 명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무술을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인내한다. 무술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참는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을 때, 무술 실력을 발휘한다. 과하지 않게, 필요한 만큼만 사용한다.
다른 제자는 어떨까?
자기 이익을 위해서 무술을 사용한다. 악한 사람을 괴롭히고,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무술을 사용한다. 칼은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면 좋은 도구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협하는 데 사용하면 어떨까? 무기가 된다. 악의 도구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다. 한 제자는 무술을 좋은 도구로 사용한다. 한 제자는 악의 도구로 사용한다.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지만, 전혀 다른 도구로 사용한다.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스승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인지를 말이다. 누군가를 스승으로 여긴다면, 스승의 뜻을 살펴야 한다.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스승의 뜻을 이어가는 거다. 스승의 뜻을 이어가지 않으면서, 그 스승을 운운하는 건 어폐가 있다. 누가 나의 스승인가? 스승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어가고 있는가? 스승을 섬기는 법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