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학교 선생님과 신부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국립학교를 나왔다. 6학년 2학기 때, 선생님이 바뀐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초등학교는, 담임선생님이 전체 과목을 담당했었다. 졸업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기간에, 선생님이 바뀐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한동안 다른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수업했고, 졸업 무렵 새로운 선생님이 왔다. 헤어진 선생님이 그리워 반 친구 몇몇이 선생님 댁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뵙질 못했다. 졸업 사진에는 새로 오신 선생님이 있었지만, 지금 기억에는 함께했던 선생님 얼굴만 기억난다.
중학생 때는 신입 선생님이 기억난다.
남녀공학이었는데, 중학생 눈으로 봐도, 어려 보이는 선생님이었다. 여자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체육 선생님치고는 몸이 매우 마르고 허약해 보였다. 따뜻한 봄날에도 겨울 점퍼를 입고 나오셨는데,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혈기 왕성한 남자 중학생들이, 어리고 허약해 보이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겠는가? 그것도 신임 선생님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체격이 건장한 다른 체육 선생님이 와서 혼을 내시기도 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그때는 남자 체육 선생님 별명이 보통은, 독사 아니면 백사 뭐 이런 식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담당 선생님보다 더 관여하셨다. 이 선생님들이 학교를 떠나실 때, 남자들은 다행이라며 환호했고, 여자들은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신부님들은 같은 날 이동하신다.
오전에 마지막 미사 집전을 하시고 이동하시는 본당으로 가시거나 안식년을 취하러 가신다. 신자들은 나와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어르신들은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신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소리 내서 우는 분들도 계신다. 신부님을 떠나보내면 새로 발령받은 신부님이 오신다. 짧게는 몇 분 길어봐야 몇십 분 차이다. 가끔은 떠나는 신부님이 가실 때쯤 도착하기도 하신다.
이런 상황을 경험하신 분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주차장에서 떠나는 신부님을 붙잡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새로 발령받은 신부님이 들어오셨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던 신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 오신 신부님을 맞이하며 환영 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떠나는 신부님이 매우 불쾌하게 자리를 뜨셨다고 했다.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잘 맞춰서 나가도 들어왔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올 초에 우리 본당에도 떠나는 신부님과 새로 오시는 신부님이 계셨다. 신부님이 떠나시기 전에, 새로 오시는 신부님이 거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네를 몇 바퀴 더 돌라고 전했다. 신부님이 떠나시고, 바로 새로운 신부님이 들어오셨다. 들었던 얘기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어떤 공동체든 그렇다.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있지만, 새로 맞이하는 반가움도 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떠나시는 것이 매우 아쉬운 분이 있다. 존경스러운 분이 그렇다. 안 가시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빌었던 적도 있었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떠나야 하는 건 숙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계속 기억날 것 같고, 아쉬워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새로 온 분을 맞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마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떠나신 분을 아예 잊는 건 아니다.
공간을 이동하신 것처럼, 마음도 이동하시는 거다. 아니, 이동시켜 드리는 거다. 마음 한편으로 이동시켜 드리는 거다. 현재는 현재 계신 분께 자리를 내어드린다. 새로운 분께 현재의 자리를 내어드리면, 지금 필요한 무언가를 채워주신다. 이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된다. 필요한 것을 얻는다. 이것을 섭리라고 표현하던가? 참 오묘한 섭리다. 떠나는 것이 헤어짐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