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자리에, 리더가 올라서길 바라며

by 청리성 김작가

한 사람은 개인이다.

공동체에서 한 사람은 매우 미약한 존재다. 있으나 없으나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공동체 전체를 대표할 때는 말이 다르다. 미약하고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사람이 아니다. 공동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된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그렇다. 가장이 가정에 주는 영향력은 크다. 몇 명 안 되는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끼치는 영향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잘 성장한 한 사람이 인터뷰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점 중 하나는, 가정이었다. 가정에서 받은 영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이유가 가정이라는 거다.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다.


기업의 색깔도 그렇다.

인원이 많든 적든, 전체적인 색깔은 대표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은 취업할 때, 기업 문화도 많이 살피는 분위기다.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일이 적성에 맞아도, 기업 문화 때문에 퇴사한다는 사람도, 곳곳에 있는 듯하다. 기업 문화는 업무 환경은 물론 함께 일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업 문화가 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분위기의 중심에 대표가 자리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대표자 한 사람의 영향력은 이렇게 크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리더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많은 리더가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리더들은 다양하게 기억되는데,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자기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리더와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리더다. 전자의 경우는 리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탐탁하지 않다. 리더라는 단어의 묵직함을 훼손시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리더의 자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내가 하고 싶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리더인 거다. 자기 욕심으로 된 리더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한다. 자기 욕심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거다.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체감되지 않는 거다. 이유는 당연하다. 모두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리더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 길을 걷는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자기희생도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리더의 자격을 갖췄거나 리더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전진 한마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리더가 갖춰야 할 마음이 아닐지 싶다.

“죽어야겠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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