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명칭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사라지면, 명칭도 의미가 없다. ‘소금’이 ‘소금’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짠맛이다. 보기에는 소금으로 보이는데, 맛을 보니 짜지 않으면 어떤가? 그래도 소금이라고 명명하는가? 아닐 거다. 그 이름을 찾기 위해, 누군가한테 물어보거나 검색하게 된다. ‘설탕’은 어떤가? 달아야 한다. 달지 않은데 설탕이라고 우기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거다. 고추는 매워야 하고, 간장 역시 짜야 한다. 명칭에 해당하는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어야, 명명하는 것이 된다.


존재 이유가 있는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다. 존재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 밖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아이가 있는 집은,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이 존재 이유가 있다. 별거 아닌 물건 같아도 다 의미가 있다. 아이가 없는 집은 어떤가?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누군가 준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게 된다. 아이가 없는 집에 주는 물건은, 쓰레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누군가한테는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만, 누군가한테는 없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가?

존재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명확한 사람은, 의욕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떨어질 틈이 없다. 아기의 예를 들었으니 조금 더 이야기하면 이렇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에게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중요한 존재 이유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걷기 시작할 때, 오죽하면,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고 할까?


부모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를 돌보는 거다.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보살피는 거다. 좋은 것은 챙겨주고 안 좋은 것은, 막는다. 어떻게 해야 올바른 행동인지를 알려준다. 부모가 없을 때, 아이가 바르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위험한 것도 알려준다. 길을 건널 때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되는 것 등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어릴 때 생각하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가슴이 철렁한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존재 이유말고, 정말 나 자신의 존재 이유 말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곤란하다. 아이가 크면 어쩔 텐가? 손안에 자식이라고, 아이가 크면 더는 부모를 잘 찾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를 찾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나 부모 그늘 밑에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도록 해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를 찾지 않는다는 것과 관계는 별개의 문제다. 누구를 위한 것 말고, 온전히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온 이유 말이다.

사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어떤 존재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나의 강점으로,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등등.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문득문득,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지금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휩싸여, 에너지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우울한 상태가 되는 거다. 우울함이 엄습해 온다면,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이유가 삶의 의욕을 돋게 하고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입맛이 도는, 청양고추처럼 말이다.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명확하면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의욕이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온 이유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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