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보고 부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부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은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나도 저 사람처럼, 돈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네….’ 시간의 여유를 가진 사람을 봐도 그렇다.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지금도 시간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시간의 여유가 없던 시절. 정말 부러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야외 테이블에 모여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생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부러웠다. 지나고 보니 추억이지만 말이다.
부러워 보이는 사람들은 아쉬움이 없어 보인다.
내가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라고 아쉬움이 없을까? 아닐 거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서,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누구나 풍족한 것이 있으면 부족한 것도 있다. 무엇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치는 그 자체로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온전히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자연이다. 자연을 다 언급할 필요도 없다. 공기만으로도 충분하다. 공기가 없다면 한 시간은커녕 십 분도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시간 자체도 매우 고통스럽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소중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짜라는 말도 된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그렇지 않은가? 나의 노력이나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숨 쉬고 있고, 누리고 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소중함을 잊는 것이 있다.
가정이다. 가정도 어찌보면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아이 양육 등에 들어간 비용이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순 있다. 반문할 순 있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생명이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생명을 그 비용에 비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주는 사랑을 그 비용에 비할 수 있겠는가? 어렵고 힘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고 싶은 일도 많다. 속상하고 아쉬운 것도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들이민다고 해도, 과연 아이들과 함께 만든 공동체인 가정을 포기할 수 있을까? 없던 일로 물릴 수 있다고 하면 물릴 수 있는가?
아닐 거다.
속상하거나 불편한 마음으로 그러겠다고 말할 순 있지만, 진심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바꿀 수 없다. 무엇을 견주어도 바꿀 수 없다. 시간을 다시 돌린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가장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단순히 ‘돈’에 국한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것, 값을 치를 수 있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본다. 그런 것들을 다 들이민다고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가정이 아니겠는가? 거저 받았음에 감사하고, 현재에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