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옳지 않은 태도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화가 날 때도 있다. 차분했던 마음이 요동친다. 잔잔하던 호수가 거센 바람으로 요동치듯이, 마음이 그렇게 요동친다. 생각할수록, 부정의 바람은 더 거세게 불어, 마음을 더욱 뒤흔든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지고,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강도가 심할수록 그 여파가 오래간다. 강력한 파도가 휘몰아친 자리를 다시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듯,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지나고 가라앉으면 다행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혼란스러움이 점점 더 강해진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다른 혼란스러움을 가져온다. 부정적인 생각은 또 다른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단정 짓는다. 단정 짓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겹치고 겹쳐서 더 큰, 마음의 혼란을 가져온다. 마음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도 본인이고,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 된다. 부당한 태도를 한 사람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부당한 짓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악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지 않다. 그냥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일지도 모른다.
부당함을 불러온 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말과 행동만으로 스스로 단정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확인을 해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믿는다. 상대방이 저지른 부당한 태도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 사람의 의도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일이 있는가? 물어보니 뭐라고 하던가? 부당함을 느끼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하던가? 아니다. 반색하며 묻는다. “내가 그랬다고?”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이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떤가? 그래도 부당하다며 씩씩대게 대는가? 아니다. 요동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는데, 왜 마음이 가라앉게 되는가?
의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부당함은, 부당함으로 느끼지 않게 한다.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이라는데 무게가 더 실린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확인해서 정말 사실이라면, 그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도 늦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감정이 격해져서 씩씩댄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동자가 스승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다. 오직 네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