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는, 다양한 상황이 벌어진다.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는 만큼, 그 해석도 다양하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고, 서로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놀라움의 종류도 다양하다. 존경의 마음으로 놀랄 때도 있고, 어이가 없어서 놀랄 때도 있다. 때로는 사늘한 무언가의 느낌으로 놀라기도 한다.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도 다르다. 공동체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리더는, 다른 생각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잘 이끌어 가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이유는, 하나다.
같은 상황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는,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전을 봐도 그렇다. 앞면을 본 사람과 뒷면을 본 사람이, 동전을 설명하는 내용은 다르다. 바라본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점은, 일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 등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져서, 초점을 만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도, 이에 해당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무시하긴 어렵다. 초점을 바꿀만한, 획기적인(?)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초점을 달리하는 건, 의미가 크다.
초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간단한 실험 하나로도 알 수 있다. 지금 가장 미운 사람 한 명을 떠올려보자. 오랫동안 미웠던 사람일 수도 있고, 최근에 미운 감정을 느끼게 된 사람일 수도 있다.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의 장점 혹은 좋은 점 5가지를 떠올려보자.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장점이나 좋은 점은 분명히 있다. 보려고 하지 않아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5개가 어려우면, 2~3개라도 떠올려보자. 어떻게든 떠올려야 한다.
다 찾았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미운 사람을 처음 떠올렸을 때와 장점을 찾은 다음 떠올렸을 때, 느낌이 어떤가? 똑같은가? 아니면 조금 달라졌는가? 대체로 조금은 달라진다. 처음보다 장점을 찾은 다음의 느낌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왜 그럴까? 초점이 장점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미운 감정을 불러온 이유가 아니라, 그 사람의 좋은 점에 초점을 맞추니 조금은 좋은 느낌이 든다.
초점을 바꾸면 마음이 바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이런 거다.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향하게 하라는 말이다. 좋은 방향으로 향해야, 좋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침에 정화조 차를 보면 그날 재수가 좋다는 말. 왜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정말 정화조 차를 보면 그날 재수가 좋았다는 데이터를 근거로 이 말이 만들어졌겠는가? 아닐 거다. 추측하면 이렇다. 아침부터, 냄새 나는 정화조 차를 보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좋았던 기분도 사그라진다. 혹여나 옷에 냄새가 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 재수가 좋다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의도인 거다.
정화조 차를 봐서 기분이 별로일 수 있는데, 별로인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좋게 생각하자는 의미라는 말이다. 어떤가, 일리가 있는가?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어떤 곳을 바라보는데, 보고자 하는 것 이외에, 아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이 아는 체를 해서야 그 사람이 보였던 일 말이다. 시선을 그리로 향했더라도, 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서, 아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필리핀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고자 하면 방법이 생기고, 피하고자 하면 핑계가 생긴다.” 내가 경험으로 체득해서 후배들한테 한 말인데, 필리핀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이 속담도 마찬가지다. 초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하고자 하니 방법이 보이는 것이고, 피하고자 하니 핑계 댈 것만 보이는 거다. 아니, 찾는 거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혹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초점은 그렇지 않은 곳에 맞추면서, 얻어지지 않다고 불평하면 누구의 잘못인가? 바닷가에서 삼겹살을 찾을 순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