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탄생만큼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
지금은 오래된 기억이 되었지만, 아직 명확한 기억이 있다. 세 아이가 태어날 때다. 모두가 다른 형태(?)로 태어났다. 첫째는 자연 분만을 계획했는데, 양수가 터졌는데도 나오지 않아 불가피하게 제왕절개를 했다. 양수가 터지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잘못된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수술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눈물을 머금고 수술했는데, 건강하게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나서 어머니한테 전화했는데, 그때 하셨던 말이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난다. “손가락 열 개 맞아? 발가락도? 열 개 맞아? 그럼 됐어.” 첫째는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고 잘 자라, 벌써 성인이 되었다.
둘째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수술한 다음 자연 분만은 위험하다고 했다. ‘브이백’이라고 명명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잘 준비했다. 위험한 분만이라 동네 병원에 다니다가 분만은,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했다. 그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분만실에 들어가서 함께했는데, 오전 8시 정각에 아이가 태어났다. 시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방송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 시각에 기도 방송이 나온다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미소를 띠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쌍꺼풀이 보였다. 간호사분들이 돈 버셨다며, 축하해주셨다.
셋째는, 또 다른 변수가 있었다.
둘째를 자연 분만으로 낳아서 셋째도 자연 분만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종합병원이 아닌 동네 병원에서 출산해도 된다고 했다. 출산일이 다가오고 진통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 세 번째니 좀 수월하겠거니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 진통했고 가장 힘들게 낳았다. 내가 힘든 건 아니었지만, 아내가 매우 힘들어했다. 소리 지르는 것을 참기 위해 수건을 입으로 물었는데, 그 때문에 이가 좋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소원은 하나다.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거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건강하면 다른 것이 추가된다.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고, 음악적인 재능이나 기타 다재다능했으면 하고 바란다. 사람이라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처음의 그 마음을 항상 떠올리면 좋겠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장 바랐던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기억한다면, 아이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첫째 돌잔치에서 했던 말이 있다.
돌잔치의 백미는 돌잡이다. 아이가 무엇을 선택할지 기대하는 시간인데, 사실은 부모가 미리 연습을 시킨다. 원하는 것을 잡도록 그 물건(?)과 자주 접촉하도록 하는 거다. 우리도 그랬다. 묵주를 가지고 놀게 했다. 당연히 묵주를 집었다. 사회자가 무엇을 집었으면 좋겠냐는 말에, 묵주를 말할 수 있었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무엇을 집든,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이후에 가만히 생각해 봤다. 왜 이 말이 떠올랐을까?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연필은 공부를 잘했으면 바라는 거고, 실은 장수하길 바라는 거다. 마이크는 가수나 아나운서를 바라는 거고, 공은 운동선수를 바라는 거다. 부모의 성향에 따라, 추가로 올려놓는 것이 달라진다. 종류는 다르지만, 지향하는 것은 하나다. 뭐가 됐든 다 좋은 거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쁜 것을 올려놓을 리는 없다. 무엇을 선택하든 다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길 바랐던 거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잘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무엇이든 좋은 길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