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으면 생각을 당하게 된다.

by 청리성 김작가

“나는 하루에, 홀로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은 무엇인가? 5분? 10분? 아니면 30분? 어쩌면 5분도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말하는 홀로 생각한다는 건, 나 자신에 관한 생각이다. 일과 관련된 생각이나 기타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생각이다. 나는 하루 평균 2시간~3시간 정도 하는 듯하다. 출근 전 기도와 묵상할 때와 지금처럼 글을 쓸 때, 그리고 이동할 때나 밥 먹고 산책하는 등의 시간이 그 정도 된다. 한창 등산할 때는 그 시간을 오롯이 생각에 썼으니, 반나절 이상을 생각하기도 한다.


생각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다.

그냥 떠오르는 것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전부다. 어떤 계기가 있어 생각거리가 정해지기도 하고, 그냥 문득 무언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전 있던 일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 한창 고민하는 부분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는, 성경 문구 한 문장이 생각의 시작이 된다. 떠오른 생각을 따라 손가락으로 글을 만들면서 따라가면, 새로운 생각들이 이어진다. 의도한 생각도 있고, 의도하지 않은 생각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생각을 따라갔을 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등산에 비유하면 이렇다.

등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옆길에 누군가가 다닌 흔적이 보인다. 원래 계획대로 등산길을 따라 올라가도 되겠지만, 왠지 모르게 옆으로 빠지는 샛길이 눈에 들어온다. 손으로 잔 나뭇가리를 치면서 걸어간다. 한참을 갔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광경을 발견한다. 샛길로 오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다. 생각이 이렇다. 처음은 의도적으로 떠올리지만, 그 생각을 따라가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른다. 이것이 생각이 주는, 우연의 매력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다. 환경을 만들고 싶지 않는거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불편하게 여긴다. 뭐라도 해야 한다. 핸드폰을 들고 SNS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불안하지 않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그렇다. 고요하게 그냥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는 TV를 켜놓거나 라디오 혹은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한다. 보거나 듣기 위한 것이 아닌, 고요함을 견디지 못해서 하는 행동이다.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을 불편하게 여긴다. 왜 그럴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에 “어? 뭐. 나는 그냥 따를게”라고 말하게 된다.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할 자리를 타인의 생각에 양보하는 거다. 자기 생각은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주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자기 생각은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나는 반대지만 다수의 의견이 찬성이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과, 생각 없이 그냥 따라가겠다는 것은 엄밀히 다르다. 생각이 없으면 선택하지 못하고 선택을 당하게 된다. 음식 메뉴야 뭐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삶의 방향과 관련된 문제라면 어떤가?


무엇이든 익숙해야 잘하게 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잘하게 된다. 정말 필요한 생각을 해야 할 때, 생각을 잘하게 된다. 생각을 잘한다는 것은 이런 거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한다. 나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 명확하게 살핀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열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다. 선택한 것을 실행한다. 이것이 생각의 흐름이다. 이 방식은 코칭 방식인데, 혼자서 하면 셀프 코칭이 되는 거다. 셀프 코칭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면, 어려운 선택도 잘할 수 있게 된다. 연습이 된다.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어떤가?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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