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데...

by 청리성 김작가

퇴근길에 유튜브 영상을 가끔 본다.

퇴근할 때는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라 책을 읽기가 어려워서, 책을 대체하는 느낌으로 영상을 본다. 책을 요약하거나 그 내용을 설명하는 영상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정치에 관심이 생겨서 짧은 영상을 좀 봤는데, 알고리즘의 힘으로 정치에 관련된 영상을 보기도 한다. 영상을 보면서 가끔 느낀다. ‘유튜브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20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보면, 중간에 광고가 나온다. 몇 초만 보면, ‘건너뛰기’를 누르고, 영상을 계속 볼 수 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무료로 영상을 보는 대가로 여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말이다.


광고에 관심은 없다.

광고를 다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던 광고가, 언제부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광고를 다 보는 건 아닌데, 그냥 흘려보내기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마음에 뭔가 턱 하니 걸린다. 후원단체 광고다. 광고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주로, 아픈 아이들이 나와서 더 그렇다. 왜, 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 중에 있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잠깐이지만,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더 빨리 ‘건너뛰기’를 누르려고 기다리는 이유다. 일시적인 도움은 주지만, 거기까지가 끝이라 그렇다. 마음의 빚을 진 느낌이다.


한 영상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타인의 아픔을 보면 슬프지만, 가족의 아픔을 보면 괴롭다고 한다. 슬픈 것은 제삼자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고, 괴로움은 ‘나의’라는 소유격을 붙이는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한다. 내 가족, 내 친구 등이 그렇다. 둘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이해됐다.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을 보고, 슬픈 마음이 든다면 제삼자로 바라보는 거다. 그 마음이 슬픔을 넘어 괴로움에 닿는다면, 제삼자가 아닌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거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살필 때, 이 기준으로 보면 거의 들어맞을 듯하다.


아픈 아이들을 보면, 슬픈 마음이 든다.

슬픔은 느끼지만, 괴로움까지 느끼진 않는다. 괴로움을 느끼면서 건너뛰기를 누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제삼자의 마음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슬픔을 넘어서는 모습을 본다. 괴로워하는 거다.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지인도 아닌데,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지?’ 이제는 다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아픔을 괴로워하는 사람은, 진정 사랑이 가득하고 자비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다. 이 마음을 지닌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다.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에서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큰 변화가 아닐까? 존경의 마음은 행동으로 변화된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가, 적극적 행동으로 변화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서는 돼지 냄새가 나고, 닭에서는 닭 냄새가 난다. 따라서 사람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다.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여기서 스스로 이렇게 질문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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