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시선, 나를 죽이는 시선

by 청리성 김작가

삶은 상황이 아니라, 시선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글을 쓸 때나 강연할 때,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가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깨달은 것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이 메시지에 힘을 실어준 계기가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이 하신 말씀이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메시지는 명확하게 기억한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한 힘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신의 성장 이유가, 벌어진 상황이 아닌, 그것을 해석한 힘이라는 거다. 어떤 상황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핵심이다.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밝은 점 찾기가 그중 하나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에 관해 물을 때, 제안하는 방법이다. 어제 지인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이 태도를 언급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이다. 지인이 나에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로 한 이야기다. 좋은 의도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표현보다는, 밝은 점을 찾는다고 표현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말 이면에는, 현실 부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표현이 그랬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수중에 자장면 사 먹을 돈밖에 없다고 하자. 자장면을 먹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표현한다. “야! 꿀맛이다.” 자장면은 자장면 맛이 나지, 꿀맛이 나지 않는다. 이 표현에서 현실 부정이 느껴진다. 자장면을 먹고 있는 자신을 부정하는 거다. 이를 밝은 점 찾기로 바꾸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장면 고유의 맛을 표현한다. 면이 쫄깃쫄깃 하다든지 아니면 장맛이 좋다고 표현하는 게 그렇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 안에서 밝은 점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또 하나의 태도는 이렇다.

열에 아홉이다. 식당에 갔다고 하자. 열 가지 반찬이 나온다. 아홉 개의 반찬은 맛있는데, 한 가지 반찬이 별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홉 개의 반찬에 집중할까? 아니다. 보통은 이렇게 표현한다. “다 좋은데….”라며, 운을 뗀다. 아홉 개는 좋은데 하나가 좋지 않다는 거다. 좋은 아홉이 아니라, 안 좋은 하나에 집중한다. 부정적인 생각에 가득 차서 그렇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습관적으로 그렇다. 좋은 것이 더 많지만, 안 좋은 하나에 집중한다.


강점이 아니라 약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그렇다.

자기가 지닌 강점이 많은데, 약점에 초점을 맞춘다. 약점을 적으라고 하면 거침없이 적지만, 강점을 적으라고 하면 주저하는 모습이 그렇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시선도 그렇다. 아이가 시험 성적표를 가져왔다고 하자. 전부 A이고 하나가 B라면, A를 칭찬하기보다 B의 이유를 묻는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도록 하기보다, 못하는 것을 끌어올리는데 더 에너지를 쏟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여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상황은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찌할 수 있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한숨만 쉬거나 걱정에 휩싸여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찌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조금의 변화를 끌어낼 것인가?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성장에 필요한지 잘 알 거다. 그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실행하면 된다. 밝은 점에 집중하고 강점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좋은 몫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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