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지는 이유는, 빛이 있기 때문이다.

by 청리성 김작가

빛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없는 빛이 없으며, 그림자는 빛이 지녀야 할 필수 조건이다. 사람들은 빛은 원하고 바라보지만, 그림자는 원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한다. 빛과 그림자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항상 붙어 다닌다. 오래전에 본 만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두운 방에 여러 명이 있었다. 불을 밝혔는데, 모두 그림자가 졌다. 하지만 한 명만 그림자가 지지 않았다. 귀신이었던 거다. 사람과 귀신을 구분하는 것도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갈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빛과 그림자, 다시 말하면 빛과 어둠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다. 달면 삼키고 싶지만, 쓰면 내뱉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달리고 있으면 걷고 싶고, 걸으면 멈춰 서고 싶은 게 사람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이다. 누우면 어떨까? 자고 싶어진다. 점점 더 편안한 상태로 마음이 흐른다.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은 있으면서, 얻고 싶은 것은 얻고자 하는 게 사람이다. 욕심인 것은 알지만, 마음이 그렇다. 빛만 얻고 싶어 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빛과 어둠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어둠을 받아들이면서, 그 뒤에 있는 빛을 본다.

어둠에 있는 지금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이후에 맞이할 빛을 떠올리는 거다. 터널 안을 들어가면 갑갑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긴 터널을 지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멈추면 어떻게 될까? 계속 터널 안에 있어야 한다.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는 없다. 터널의 끝에서 만날 빛을 기대하면서 계속 나아가는 거다. 계속 나아가야 터널을 벗어날 수 있고, 빛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항상 빛만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터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벗어날 시기가 온다. 터널에서 계속 나아갈 때만, 그 빛을 맞이할 수 있다. 어둡다고 멈추거나 주저하면, 터널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빛을 맞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빛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이 터널 때문일까? 계속 나아가지 않는 자신 때문일까? 대부분은 터널이라고 말한다. 터널이 없었다면 어둠에 갇힐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널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환경을 어찌할 순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어둠에 갇혔을 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둘을 잘 구분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터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터널을 계속 달려 나가는 거다. 그것 말고는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련을 버려야 한다. 터널이 존재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왜 터널이 있는지 투덜대봤자 소용이 없다. 없어지길 바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마음만 더 갑갑해질 따름이다. 어둠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방법을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빛을 맞이하고 그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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