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푼 자비는 잊고 받은 자비는 기억하는 사람이 어른이다

by 청리성 김작가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문장이다. 왜 이 문장을 선택했을까? 사람은 잘 잊기 때문이다. 희대의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 벌어져도 그렇다. 당시는 온 나라가 그 이슈로 도배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잊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는 거다. 당사자와 연관된 사람들만 기억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아파한다. 그래왔기 때문에, 이 문장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잊지 않고 기억해서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표현보다, 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모든 일을 기억할 순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끔찍한 일이나 잊고 싶은 경험을 잊지 못하는 고통도 매우 크다.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이 그렇다. 의도하지 않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생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면, 이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때로는 잊어야 할 것도 있다. 문제는,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는다는 사실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무심하게 바라보면, 언젠가는 내 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나와 내 가족도 그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인 것도 그렇다.

잘 잊는다. 나도 며칠 전에, “아차!” 하면서 깨달았다. 무엇일까? 용서다. 내가 저지른 잘못과 받은 용서는 쉽게 잊는다. 타인이 나에게 한 잘못은 어떤가? 오래 기억한다. 큰일이 아님에도 오래 기억한다. 용서했다고 하지만, 차 우려내듯 계속 우려낸다.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되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 일을 꺼내게 된다. 당사자는 민망해하거나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한다고, 속이 풀리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후회한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때뿐인 거다. 순간 올라온 감정으로,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매번 느끼지만 참 어렵다.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지 매일 느낀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루틴을 하기로 하면 하는 것이 있다. 잘 보이는 곳에 써놓거나 붙여놓는 거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들은 냉장고에 붙여놓는다고 한다.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서다. 의지가 고갈돼서 냉장고로 향했는데, 결심한 내용을 보면 어떨까? ‘에라, 모르겠다.’하고 냉장고 문을 젖힐 수 있다. ‘그래, 참아야지!’ 하며 문고리에서 손을 뗄 가능성도 크다. 냉장고 문에 결심한 내용이 붙어있지 않을 때, 후자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다. 또 하나, 냉장고는 매일 한 번은 가게 되는 곳이다. 뭘 먹더라도 냉장고 문을 향하게 된다. 매일, 최소한 한 번은 반복해서 본다는 말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해야 한다.

반복해서 보고 인지해야 한다. 종이에 한 문장을 쓰고 그 위에 계속 반복해서 쓰면 어떻게 될까? 점점 진해진다. 어느 순간에는 종이에 홈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종이를 깔았던 곳에 자국이 남는다.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복해서 계속 바라보고 떠올리며 되새기면, 마음에 새겨진다.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기억한다. 머릿속에서는 잠시 잊힐 수 있지만, 마음에서 일깨워준다. 무심하게 행동하고, ‘아차!’ 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런 이유에서다. 한 번에 바뀌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간격을 늘려가면 된다.

‘아차!’ 하는 간격을 늘려가면 된다. 횟수를 줄이고 간격을 늘리면, 점차 마음이 자리 잡게 된다. 마음이 자리 잡는다는 건, 추구하는 마음 상태에 머문다는 의미다. 논어에 나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처럼,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빠르게 인지하고 빠르게 수정하게 된다. 마음을 다지면 그 간격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된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다. 완전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노력하는 동안 성장하면서 성숙하게 되고 그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면, 그것이야말로, 잘 사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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