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하기 위한 마음

by 청리성 김작가

악습을 끊는 데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비단, 악습뿐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끊어내기 위한 첫 단추는, 결단이다. ‘결단’이라는 단어에도 그 의미가 잘 들어있지 않은가. 악습이라고 하면, 안 좋은 습관을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잘못된 것에 기대고 의지하는 거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확신한다. 확신을 넘어, 맹신하기까지 한다. 양육이 그중의 하나다. 아이들은 강압적으로 해야, 올바르게 자란다고 여긴다. 강압적인 방법이 최선이라 여기는 거다. 강압적으로 했을 때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확신하고, 나중에는 맹신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그 모습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 가식이다. 강압적인 부모 앞에서만 보이는 행동이다. 과연,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맞는가?


행복한 삶도 마찬가지다.

잘못 알고, 잘못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행복에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저마다의 기준이 있지만, 대체로 물질적 풍요에 맞춰지는 듯하다. 이것만 갖춰지면 행복한 삶은 절로 따라올 것처럼 보인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한 삶으로 안내할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로또 당첨을 열망하는 이유도 그렇다. 돈 때문에 서러움을 겪어본 사람은 더 그렇다. 풍족한 의식주를 누릴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수단이라는 말은, 필요조건이라는 의미다. 필요조건이, 충분조건에 해당하진 않는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조건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 중,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 그 이유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여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들은,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물질적 풍요 그 자체가 아닌, 성공에 따른 보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그렇다. 그것이 본질이고 핵심이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고, 과정에 따른 결과물로 여기는 거다.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를 행복에 충분조건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지 않으니, 그것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 퍼즐에 마지막 조각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거다. 다른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행복의 충분조건은 무엇일까?

무엇이라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 과연, 누가 행복의 충분조건을 말할 수 있겠는가. 단정할 순 없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제시할 수 있다. 경험으로 느끼고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충분조건은, 지금이다.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믿는다. 지금 만나는 사람 그리고 지금 하는 것에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고 싶다. 며칠 전 광복절 전야제 축제에서 싸이가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공연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으려는 사람들에게, 내려놓고 지금 시간을 즐기라고. 나도 가끔 가족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좋은 풍경을 보거나 장면을 볼 때, 핸드폰에 담으려는 노력을 내려놓으라고. 지금 순간을 눈과 마음에 담으라고 말이다.


결단이 필요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멈추고, 올바른 방향으로 마음을 트는 결단이 필요하다. 잘못된 방향임을 알고도 쉽게 틀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부정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추구한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후회가 남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에, 지금 오늘의 자기 모습을 기대했는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후 10년은 어떤 모습이길 원하는가? 그 모습을 갖추도록, 필요하지 않은 것을 끊고 필요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10년 후에, 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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