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僞善)’
그럴 마음이 없는 데 그런 마음인 것으로 포장하는 모습을 보면, 이 단어가 떠오른다. 사전에도,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이라고 설명한다. 속과 겉이 다른 모습이라는 말이다. 속과 겉이 다른 게 좋은 모습으로 비칠 때도 있다. 속은 따뜻한데 일부러 차갑게 표현할 때가 그렇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표현이 서툴거나 어색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는 된다. 하지만 속과 겉이 다르다고 표현할 때는, 대체로는 안 좋은 모습이다. 속에는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으면서, 순한 양처럼 행동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동체 안에서 가끔, 이런 생각을 들게 할 때가 있다.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누가 좋은지 의구심이 들 때가 그렇다. 다 좋아지라고 한다고 하는데, 그 ‘다’에 나는 왜 포함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나뿐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든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모두의 만족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과반은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소수 몇 명을 위한 것이면서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씁쓸해진다. 모를 것 같지만, 안다. 표현을 안 할 뿐이다. 한두 번은 넘어갈 수 있겠지만, 계속되면 더는 봐주기가 어렵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위해서 하는 말과 행동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속내를 알게 된다.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희생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좋게 바라본다. 좋게 바라보는 이 마음이 오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계속되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지점이 향하는 곳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렇다.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자기의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어떤 속내가 있는지 찾게 된다. 오래지 않아, 알아차리게 된다. 그 마음을 모를 거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을 하는 당사자뿐이다.
사람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개인의 이득을 위해 하는 말과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이 어려우니 그런 삶을 살아내신 분들을 존경하고, 성인(聖人)으로 추대하고 공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순 있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부분이 타인에게 돌아가는 건 옳지 않다. 내가 조금 더 편하기 위해, 타인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내 마음을 증명한다.
감추려고 해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된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주머니에 송곳을 넣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송곳의 날카로운 부분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 감추려 해도 결국 드러난다. 말과 행동도 그렇다. 순간을 넘길 수 있고 잠깐은 눈을 가릴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기 위해서는 마음이 진심이어야 한다. 마음이 진심이면, 노력하지 않아도, 말과 행동이 진심이 된다. 마음은 진심이 아닌데, 말과 행동을 그렇게 하려고 하니 불편하고 어려운 거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하는 조언이 있다.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먼저 잘 살아내라고 한다. 잘 살아내면, 글도 좋아지고 말도 좋아진다는 게 이유다. 명쾌한 답이다.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