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타워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31층이었는데, 행사가 있어서 올라갔었다. 창밖을 내다봤는데. 모든 건물이 작아 보였다. 사람은 식별하기 어려웠고, 차량도 점으로 보였다. 더 위로 올라가면 건물도 점으로 보인다는 것을 안다. 건물이든 산이든, 높이 올라갈수록 작아 보인다. 고개를 들기가 힘들 정도로 높은 건물도, 그보다 높은 건물에 올라가면 작게 느껴진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갈 때는 더 그렇다. 모든 것이 작고 연약해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나이와 내적 성장으로 그렇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작고 여리게 보인다. 스무 살이 돼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 복학한 스물서너 살의 선배가 아저씨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이 또래의 사람이 어떻게 보였을까? 아저씨에서 청년으로 이제는 애(?)로 보인다. 같은 나이지만, 상대적으로 느끼게 된다. 내 나이에 따라, 달리 보인다. 선배가 후배를 바라보는 것도 그렇다. 후배일 때는 선배가, 오르지 못할 산처럼 느껴진다. 그 위치가 되면 어떤가?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커 보였던 그 자리가 왜소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는 장면도 본다.
후배가 그보다 더 후배를 가르치거나 나무랄 때다.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혼나는 후배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길거리 가다가 비슷한 장면을 보기도 한다.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더 어려 보이는 아이에게 뭐라고 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진지한 표정을 지을수록 더 귀엽게 느껴진다. 조금 더 지나면 지금의 자리도, 더 작고 왜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후배들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위로 올라간다고 시야가 넓어지는 건 아니다.
자칫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이가 더 많거나 더 많이 배우거나 선배면, 더 많이 알고 정답에 가까울 것으로 착각한다. 후배가 그러면 그나마 낫다. 존경과 배려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오히려 기특하게 여길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좀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를 낮게 바라본다. 31층에서 바닥을 내려보는 느낌으로 그렇게 내려다본다. 눈을 그렇게 뜨는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 그렇게 낮게 깔아서 바라본다.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좋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말이 막히면, 나이를 묻거나 경력을 따진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따지면 된다. 나이 혹은 경력을 묻는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논리로 안 되니, 나이와 경력으로 누르려는 거다. 자기 문제를 덮으려는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무엇 때문인지 잘 안다. 본인만, 다른 사람들이 모를 거라 여기는 거다. 모를 거라 여기면서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당신만 모른다고 생각하지, 사람들은 당신의 의도를 다 알고 있어요!”
자기 눈이 가려지면, 다른 사람의 눈도 가려졌을 거라 여긴다. 욕심이나 거짓의 가리개로 가려지면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으로 여긴다. 자기가 욕심을 내니, 다른 사람들도 욕심낼 것이라 단정한다. 자신이 거짓으로 대하니 다른 사람들도 거짓으로 대할 것이라, 판단한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을 걷어내야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기회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가려진 상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나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