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바람이 매우 쌀쌀해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열어 둔 창문 사이로 들어 온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더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덥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춥다는 말이 입에서 나온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연말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이면 떠오르는 또 하나는 자선이다. 사랑의 온도라고 해서 자선냄비에 기부하는 사람들, 그밖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부 하는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 소식을 알린다. 놀라운 것은 기부할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하는 분들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분들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또 어떤 이야기가 들릴지 기대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내 이야기를 보태야 할 텐데 아직 그러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금전적으로 보탬은 미약하지만, 다른 것으로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활동이다. 좋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느끼고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 루틴 중에 제일 소홀히 하고 있는 운동도 그렇다. 운동은 시간이 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든 마찬가지다.
각자가 가진 달란트가 다르다. 그 달란트를 가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몫을 내어놓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어놓는 달란트를 자기가 하지 못한다고 훔치러 들거나 소극적으로 임한다면 자기가 가진 달란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가 어렵다. 자기의 달란트를 드러내는 이유는 자기의 영광이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에게 준 달란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그래서 그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는 것이다.
나의 달란트가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미소하거나 미약하거나 적은 것이라도 분명히 달란트 있다. 그 달란트를 활용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 혹은 사회에 내어 놀 수 있는 몫은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내어놓을 때,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느끼게 된다. 나는 어떤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얼마큼 잘 활용하고 있는가? 그 달란트를 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