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데, 라디오 광고 하나가 귀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해서 듣지 못했는데, 자동차 검사 일정으로 차를 가지고 나와서 듣게 되었다. 딸이 운전하는 아빠에게 다그치듯이 말한다. 전방주시 하라는 말이다. 운전할 때 핸드폰이나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정면을 잘 보고 운전하라는 캠페인이다. 아이가 “전방주시”라고 강조하는 말을 하는데, 귀에 쏙 들어왔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이 하는 말인데, 얼마나 잘 들어야겠는가! 아이가 또박또박하는 말에 잠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한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운전해서 이동하는데, 신호 정지로 정차하고 있었다. 좌회전 차선이었다. 직진하는 옆 차선에서 트럭 한 대가 멈췄다. 트럭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어 쳐다봤는데, 맞았다. 기사님이 뭔가 물어보려는 듯했다. 나도 창문을 내렸다. “OO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아는 곳이라 직진해서 어떻게 가라고 이야기해 줬다. 신호가 바뀌고 이동하는데 트럭을 쳐다보게 됐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잘 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게 문제였다.
고개를 돌려서 정면을 봤는데 다른 트럭이 멈춰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약간의 차이로 트럭 뒷부분을 받았다. 트럭이 왜 서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건널목이 있었는데, 신호 때문인지 보행자가 있어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다른 차량의 이동을 위해 갓길로 차를 대고, 트럭 기사님과 합의했다. 보험 처리하면 번거로우니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1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계좌로 입금해 드리고 이동했다. 안 써도 될 돈을 쓰고 내 차량도 앞부분이 찌그러진 것을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잘 가는 트럭을 봤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길가에 댔는데, 나와서 보니 주차한 자리에 차가 보이지 않았다. 차 대신, 견인됐다는 스티커가 바닥에 붙어있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이동해서 차량을 찾고 과태료를 냈다. 잘 가지고 다니지 않던 차량으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나가니, 허탈했다. 영화에서나 봤던, 재수 없는 날이었다. 이 일로 정신을 차렸으면 다행인데, 이후에도 가끔 전방주시를 잊어서 부딪힐뻔한 상황이 있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곳만 봐야 한다.
운전할 때만 그런 게 아니다. 목표를 갖고 정진할 때도 그렇다. 이리저리 둘러보면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적 그리고 물리적 여력이 안 될 수도 있다.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우리는 이미 어릴 적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숙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거다. 두 가지를 다 하겠다고 야심 차게 덤볐지만,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헷갈렸다.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은 건 후회뿐이었다. 결단하지 못한 후회다. 뭐든 하나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후회가 남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한 번에 몇 가지를 동시에 하려는 욕심을 낸다. 어찌하여 잘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 뭐든 하나만 집중해서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알지만, 상황이 닥치면 잘되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이번에는 잘 되기를 소망하며 도전한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결과를 내긴 어렵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순 있지만, 동시에 잡을 순 없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삶으로 해석한 어휘]
“선택”: 집중하기 위해, 우선 해야 할 마음의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