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이유를 기억할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by 청리성 김작가

알면서 잊고 지내는 것들이 있다.

항상 기억하면 좋지만, 잊게 된다. 지나고 나서, ‘아차!’ 하는 것들이 그렇다. 집에 핸드폰을 두고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요즘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핸드폰을 두고 나온다. 나올 때 챙기려고 하는데, 어디에 뒀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렇게 된다.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나갈 준비할 때 그렇다.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준비하고 나와야 할 때도 그렇다. 미리 준비하면 여유 있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에 쫓기면서 준비할 때가 종종 있다. 알면서도 순간 잊게 되거나, 무감각해지는 것들이 있다. 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것들은 웃고 넘기거나 다음에 잘 챙기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사람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

가볍게 넘길만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벼운 듯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일이 있다. 작은 말 한마디가 그렇다. 가깝고 편하다는 생각에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매우 묵직한 돌덩이로 날아올 때가 있다. 인지하고 빠르게 수습하면 다행인데, 마음이 또 그렇지 않다. 무언가가 계속 들쑤신다.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이겨도 의미 없는데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몇 번의 경험으로 그렇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에는 잊는다. 희한할 정도로 잊게 된다.


며칠 전에도 경험했다.

아내는 약속으로 외출했고, 집에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다 마치고 나니 저녁때가 되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때를 놓치면 늦은 시간에 먹을 듯하여 밥 먹을 준비를 했다. 국이 담긴 냄비에 불을 붙였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 거다. 잘 됐다 싶었다. 아내한테 차려달라고 하려던 찰나, 아내는 “아! 좀만 더 있다 들어올걸”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들어가면서, 알아서 차려 먹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이 시발점이 됐다. 왜 그런지, 그 말이 매우 기분 나쁘게 들렸다. 말은 그렇게 했더라도, 차려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아내는 평소 말을 쉽게 던지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머리가 삐쭉 섰다. 심장도 기분 나쁘게 뛰기 시작했다.


아내는 옷 갈아입고 거실에 나왔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았다. 아내는 반찬을 꺼내고 이것저것 물었지만, 계속 대답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안방에 들어갔다가, 뭘 좀 갖다 달라고 했는데, 안 들릴 것 같아서 큰 소리를 냈다. 여기서 사달이 났다. 아내는 왜 아까부터 계속 그러고 지금은 화를 내냐며 따졌다. 화를 낸 게 아니라 안 들릴 것 같아서, 큰소리를 냈을 뿐이라고 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적막한 시간이 계속됐다.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별거 아닌 일이었다. ‘아까는 왜 그랬을까? 그냥 넘어갔으면 될 일을….’


시간이 지나고, 일이 벌어져야 깨닫는다.

마음이 틀어지고 나서, 생각하면 그렇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서로 마음 상하고 불편한 상황을 만든다. 며칠씩 가는 건 아니지만, 짧은 그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진다. 평범하고 가볍게 보냈을 시간을, 매우 무겁고 어둡게 보낸다. 또 잊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의 기분 나쁨을 넘기면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불편한 마음도 금방 가라앉는다는 것을 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부딪히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불편한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잊는다. 몇 초를 참지 못해서, 몇 시간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알면서 또 그런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이럴 때 보면, 스스로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이든,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본질이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그것을 하는 이유다. 누군가와의 관계라면, 그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이유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잊는 순간 본질을 잃는다. 왜 이것을 하는지 혹은 왜 함께 있는지를 잊는다. 잊고 일이 벌어진 다음에야 알아차린다. ‘아차!’하고 말이다. 마음이 불편할 때나 불편한 상황과 마주할 때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금 무엇 때문에 이것을 하고 있는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고 그 답을 충실히 실행할 때,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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