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이 있지만, 타인의 모습에 더 집중한다. 자기가 누리지 못하는 타인의 모습을, 행복으로 정의한다. 자기가 누리는 행복은 잘 느끼지 못한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타인의 행복에만 관심을 둔다. 타인의 행복을 부러워할수록 얻는 건, 자괴감뿐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조차 외면하면서, 더 큰 자괴감에 빠진다. 옆에서 이야기해 줘도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완전히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군가의 무엇을 부러워한다.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나를 부러워한다는 거다. 자신이 현재 갖지 못한 것이나 누리지 못하는 것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자유로운 생활이 부러운 거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함께 꾸린 가정이 부러운 거다.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육아의 힘듦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어떨까? 어떤 힘듦이 있더라도 아이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건 사실이다. 타인은 자신을 부러워하는데 말이다.
이런 모습을 잘 표현한 광고가 있다.
오래전에 봤는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박카스 광고였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고 부러워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사표를 내고 싶어 하는 회사원이 있다. 백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사표를 낼 수 있는 회사에 다니는 걸 부러워한다. 군인이 백수의 모습을 본다. 몸 고생이 너무 심한 군인은 백수를 부러워한다. 회사원은 군인을 본다. 경쟁에 지친 회사원은, 악몽 같던 군 시절을 그리워한다. 서로의 모습을 보면 부러워하는 장면이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이 광고의 메시지는 이렇다. ‘세상 사는 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피로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표현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
피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처럼,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없지 않을까? 누구나 피로하고 힘든 것처럼, 누구나 행복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지인들의 이야기나 광고의 모습처럼, 나의 힘듦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누구나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누구나 무언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불행과 행복의 한 끗 차이는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누리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행복이다.
누리지 못하는 것에 집중하면 불행이다. 일에 치일 때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일이 없어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떨까? 어떤 힘듦이 더 나을까? 누구나 피곤하고 누구나 힘들다. 어떤 상황도 온전히 편하고 쉽진 않다. 어떤 힘듦을 견뎌낼 것인가? 이 선택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나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군대 표어가 떠오른다. 견디지 말고, 즐겨야 한다. 즐겨야 행복할 수 있다. 자기 현재에 집중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