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명확한 지식일까?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일까? 많이 알고 잘 아는 것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기본 재료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차분하게 생각하는 거다.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그곳에 집중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해지지 않은 판단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검사외전>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악연이긴 했지만, 이 말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매일 아침 2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한다. 명상하면, 누가 자기편인지 혹은 적인지가 보인다고 한다. 맑은 정신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오는 통찰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나도 이런 시간을 갖는다.
매일 새벽 물 한 잔을 마시고, 가정 제대 앞에 앉는다. 개인 장괘틀이 있어, 무릎을 꿇고 앉는다. 가만히 지난 하루를 돌아본다. 잘못한 점은 반성한다. 아쉬움과 후회가 짙게 밸 때는 좀 더 오래 그 부분에 머물며 묵상한다. 묵상하면 새롭게 알아차리는 것이 있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할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난 하루를 묵상하고 나면, 오늘 하루를 살핀다. 일과 전체를 살피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미리 살아보는 거다. 발표가 있는 날은 발표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리허설이 진행되기도 한다.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시뮬레이션처럼 먼저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그날의 발표와 미팅이 어떻겠는가?
머릿속으로 하루를 먼저 산 날은 여유가 있다.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까?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편안하다. 매일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이 있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날이다.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약식으로 하거나 하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이 급하고 머릿속이 엉클어진 느낌이 든다. 버스에 앉아서라도 이 시간을 갖는데, 상황에 따라 마음이 다르다. 집에서 할 때와 비슷한 효과(?)가 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이 그렇다. 정신과 몸은 하나라는 말이 실감 난다. 맑은 정신은 몸 상태가 좋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제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제시간에 자야 한다.
또 하나. 몸 상태를 잘 유지한 상태에서, 잠이 들어야 한다. 늦은 시각에 먹거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자면, 제시간에 일어나기 어렵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행동을 하는 날은, 이미 제시간에 일어날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조금만 더’를 반복하면서 마지노선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날은 어렵다.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변명하지만, 사람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절제의 힘이 강하다. 나 같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린다. 스스로 위로를 준다고 여긴달까? 곧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고요한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시간이 빠진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긴 어렵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도 어렵다.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 스스로 나락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순간의 감정이 불러오는 건,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전날 밤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새벽 시간은 전날 밤이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전날 밤을 잘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