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속촉’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음식을 먹을 때 하거나 듣는 말이다. 주로 튀김 종류의 음식 식감을 이야기할 때 사용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는 일관성을 좋게 평가하지만, 음식에서는 아닌 듯하다. ‘겉바속촉’한 음식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성이다. ‘겉바속촉’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성 없이는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맛도 맛이지만, 이런 정성에 더 마음을 두는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에 회사 일로 식당을 찾은 적이 있었다.
‘겉바속촉’한 음식이 나왔다. 고기만두다. 안은 육즙이 나올 정도로 촉촉했고, 겉은 매우 바삭했다. 지인의 단골 식당이었는데, 지인이 올 때만 맛볼 수 있는 메뉴라고 소개했다. 지인이 매우 중요한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주방장님께 물어봤다. 직접 만두를 빚어서 삶는다고 했다. 이후에 삶은 만두를 기름에 튀긴다고 했다. 만두 겉을 무언가로 입힌 듯 보였는데, 아무튼 시간도 걸리고 손도 많이 가는 듯 보였다. 자세한 내용까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공정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다른 고급스러운 음식보다, 만두로 젓가락을 더 가져갔다. 흔히 먹을 수 있는 만두가 아닌,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겉과 속이 다른, 또 다른 모습도 있다.
한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른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모습과 내가 느끼는 모습이 다른 것을 말한다. 남들 눈에는 힘들어 보이고 안쓰럽게 보이지만, 당사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그렇다. ‘저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쁨으로 가득한 모습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봉사다. 남들이 봤을 때는,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하는 분들이 있다. 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는 좋은 마음으로 한다. 자기의 역량을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기꺼이 맡아서 한다. 사회적으로나 경제 논리로 봤을 때 그리고 효율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인데 말이다.
내가 하는 모습에도 이런 모습이 있을까?
누군가의 눈에는 “굳이 왜?”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것 말이다.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을 듯하다. 타인의 눈에는 가치 없고 의미 없지만, 스스로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 어쩌면 이 일이 진정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