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동체든 서열이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공동체든 그렇지 않은 공동체든, 서열이 없는 곳은 없다. 없다고 해도 암묵적으로, 자연스럽게 나뉘게 되어 있다. 공동체에서는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원활하게 해야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역할은 일률적으로 나란히 펼쳐지지 않는다. 회사에 부서가 있고 역할에 따른 직책이 있듯이, 다른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에 필요한 모둠이 있고, 각 모둠의 역할에 따라 자연스레 서열이 정해지게 된다. 맨 앞 단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단에서 한 역할을 취합하고 정리하는 중간 단계의 역할이 있다. 중간 단계의 역할들이 모이면, 종합해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역할이 있다. 공동체는 각 역할의 단계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무리 없이 돌아간다.
역할이 항상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 맨 앞단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중간 단계로 올라가고,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 위 단계 역할을 하도록 올라간다. 올라가는 순서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개인의 역량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사람의 도움 그리고 상황 등이 잘 어우러져야, 단계가 올라간다. 누군가는 ‘초고속’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빠르게 올라간다. 누군가는 ‘만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느리게 올라간다. 빠르게 올라간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느리게 올라간다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빠르게 올라갔다가 한순간에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 역할에 맞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그렇다. 느리게 올라갔지만 견고하게 역량을 갖춘 사람은,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다.
방법이 중요하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작은 공동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큰 공동체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보인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다. 목말을 태우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래에서 올려주는 모습이 그렇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려주는 모습이다. 아랫사람들이 잘해서 위로 올라가면 그 윗사람은 자연스럽게 더 위로 올라간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지 싶다. 이와는 다른 모습을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다. 자기 힘으로 올라왔다고 해야 할지 혹은 억지로 올라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 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지만, 마땅한 표현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자연스럽게 올라온 사람은 밑에서 올려줬다.
밑에서 올려준 이유가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윗사람으로부터 존중과 배려를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섬김받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섬김받은 사람은, 마땅히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섬기고 싶은 마음이, 올리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올라오지 않은 모습은, 올려주는 장면이 아니라, 밟고 올라서는 장면이 그려진다. 사람 수보다 의자의 개수가 적으니, 자리에 앉기 위해 누군가를 밀치거나 몰아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존중과 배려 그러니까,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섬겨야 섬김받는다. 밟고 올라서는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없다. 비굴하게 굴거나 굴복하는 사람은 있어도, 섬기는 사람은 없다. 비굴하게 만들고 굴복시키면서 올라가고 싶은가? 자연스럽게 올려져서 올라가고 싶은가? 섬김의 유무가 이 둘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