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속한 곳은 어디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말에는 묘한 무언가가 있다.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깨달았을 때, 글로 정리한 내용이 있는데, 제목이 ‘수신자의 의미와 발신자의 의미’였다. 말하는 사람의 의미와 듣는 사람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경험했던 상황은, 문제가 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한 사람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해석한 모습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학회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체 세션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나왔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에, 주제별 세션 강의장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나오는 길에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후배에게 말했다. “가니?” 후배는 말했다. “네, 갑니다.” 잠시 후, 선배가 로비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어? 갔다고? 나도 갔는데. 아? 집에 갔다고? 알았어. 다음에 보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선배의 ‘가니?’라는 말은, 주제별 세션 강의장으로 가냐는 질문이었다. 후배의 ‘네. 갑니다.’라는 대답은, 집에 간다는 답변이었다. 질문한 사람과 대답한 사람의 의도 격차가 큰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주어가 빠졌다. 각자가 생각하는 주어는 생략하고, 결론만 말했다.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자기가 생각한 주어를 생략할 때가 많다. 자기가 알고 있으니, 상대방도 당연히 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상대방은 모른다. 내가 아는 것과 상대방이 아는 것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강의장으로 향하고자 하는 선배의 머릿속과 집으로 가고자 하는 후배의 머릿속을 서로 알았겠는가? 알았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선배가 “강의장으로 가니?”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후배는, “아니요. 집으로 갑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주어를 붙이고 생략하고는 매우 큰 차이를 불러온다. 말하거나 문자를 보낼 때, 이것 하나만 지켜도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내가 전제하는 내용(대체로, 주어)을 생략하지 말고, 붙여서 이야기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야, 난감한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또 다른 상황도 있다.

가치관이 다를 때다. 가치관은 자기 생각의 중심이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가치관이 명확한 사람은, 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가치관이 명확하게 서지 않은 사람은 상황에 따라 이렇게 판단하기도 하고 저렇게 판단하기도 한다. 가치관은 중심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틀이기도 하다. 스스로 가두는 틀이다. 그 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확고한 가치관을 품은 사람은, 그곳을 벗어난 상황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기도 한다. 고집이 센 사람을 보면 그렇다. 상황을 봐서도 그렇고 사람을 봐서도 그런데,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가치관의 중심을 바로 잡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살피는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


또 다른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마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스포츠를 예로 들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갈린다고 하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에 관한 이야기만 들리면 귀가 솔깃해진다. 작은 소리나 지나가는 소리도, 귀에 걸린다. 눈에도 걸린다. 축구 이야기는 어떨까? 잘 들리지 않는다. 크게 들려도 귀에 걸리지 않고 눈앞에 있어도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기 마음이 속해 있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집중이랄까? 아무리 시끄러운 곳이라도, 자기 이름은 기가 막히게 듣는 것이 그렇다. 소리로 끝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메시지로 들어오는 것이 있다. 메시지로 들어오는 것이 내 마음이 속한 것이고, 그 안에 머물 때 들어온다.


지금 내 마음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자주 들리고 보이고 접하는 것이 곧, 내가 속한 곳이 아닐까? 가만히, 내 마음이 속한 곳이 어디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 마음이 속한 곳이 내가 원하고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한다면, 확신을 품고 그렇게 머물면 된다. 아니라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곳을 명확하게 하고, 그 안에 머물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봤을 때, 자기가 걸어온 길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띨지 미간을 찡그릴지는 여기에 달렸다. 지금 살피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 흐뭇한 미소를 띨 수 있다면, 참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