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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y 21. 2021

1. 꾸준함으로 만드는 가족의 약속

생활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출근할 때 깨어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출근 시간이 당겨진 것도 아닌데,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출근 의식이 있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가기 전 지정된 곳에 서면, 아이들이 줄을 선다. 때로는 자신이 맨 앞에 서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서럽게 울기도 했다. 그래서 순번과 규칙을 정했다. 오늘은 첫째가 내일은 둘째가 다음날은 셋째가 앞에 서게 했다. 맨 처음 섰으면, 다음날은 맨 뒤로 가는 식이다. 몇 번 하고 나니, 자신들이 알아서 순서대로 서면서 모르면 알려주기도 했다.      


정렬을 마치면, 의식이 시작된다.

배꼽 손을 한 상태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배꼽 손, 아빠, 다녀오세요~”그리고 한 발짝 앞으로 나온다. 앞으로 나온 아이를 들어 올리면, 아이가 입에 뽀뽀한다. 그러면 나는 양 볼에 뽀뽀한다. 그렇게 세 명의 아이와 의식을 치르고 출근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런 의식은 첫째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했던 것 같다. 처음은 혼자 했고, 둘째 셋째가 나오면서 한 명씩 인원이 추가됐다. 걷지 못할 때는 아내가 안고 있다 나한테 넘겨줬고, 나는 뽀뽀하고 아내에게 넘겨줬다. 현관문을 열고 나올 때면, 행복한 마음과 함께 우려도 됐다.     


‘이런 의식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크면 그만하게 되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그날이 가까워지게 된다. 그 생각이 마음 한편을 무겁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끝이 없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볍게 포옹을 한다. 출근할 때는 얼굴 보기 어렵고, 퇴근해서 만나면 나는 팔을 벌리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안기러 온다. 고등학생이 된 첫째도 지금까지는 안겨 온다.     


한참 의식이 거행되던 시절, 첫째가 5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같이 놀다 너무 예쁜 마음이 들어, 입에 뽀뽀하려고 하는데 기겁을 했다. 당황한 마음에, 아이에게 질문했다.

“아빠 출근할 때는 뽀뽀하면서, 지금은 왜 안 해?”

“그때는 해야 하니까요.”

아이는 대답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아이의 답변을 듣고, 습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입 뽀뽀하는 것이 싫지만, 아침에 하는 입 뽀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의식을 하지 않았다면, 입 뽀뽀는 진작에 끝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뽀를 피한다고 해서,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다.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아이도 야구를 좋아해서, 둘이 야구장을 가기도 했다. 스킨십도 스스럼없이 했지만, 입 뽀뽀만큼은 강력하게 뿌리쳤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한테도 그랬다.

   



아이가 성장해도, 스킨십이든 대화든 스스럼없이 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

아이가 이미 컸더라도, 지금부터라도, 계기를 만들어서 꾸준하게 해야 한다. 꾸준하게 이루어지는 행동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뇌가 굳이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저항력이 덜하게 된다. 익숙한 것은 올바른 것으로 인지하는 게, 뇌이기 때문이다.     


이케가야 유지의 <단순한 뇌 복잡한 나>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올바르다’와 ‘그르다’의 기준은 없다고 한다. 그 환경에 오래 살아서 그 세계의 규칙에 얼마나 깊이 순응하고 있는가가 뇌에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올바르다’라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편안’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자신이 마음 편하게 느껴서 ‘호감’을 느끼는 것을 ‘올바르다’라고 판단하기 쉽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뎌낼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했다면, 그 시간과 노력이 덜 들겠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다면 감수해야 할 크기가 더 크고 무게가 더 무겁다.      


가족만의 좋은 약속을 만들 필요가 있다.

약속은 가족을 하나로 만드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약속은 함께 지켜야 하는 의무가 돼도 하지만, 함께 공유되는 것도 포함된다. 같은 종교를 갖고 함께 종교 활동을 하게 되면, 가치관이 공유된다. 어떤 삶을 지향하며 살아야 할지 함께 알게 되고, 길을 벗어나게 되면 함께 끌어줄 수 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좋다. 최근에는 캠핑을 함께 하는 가족이 늘고 있는데, 이 방법도 좋다고 본다. 밤에 불을 지피면서 나누는 얘기에는 진심이 담긴다. 야외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분위기가 그렇게 된다. 어려운 얘기도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다.


회의실에서는 딱딱한 얘기가 카페에서 나누면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것과 같다.

우리 가족도 불을 지피면서 각자가 어렵고 힘든 얘기를 꺼내곤 한다.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그 자리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를 이룬다. 듣지 못해서 알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더 잘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다짐하게 된다.     




캠핑 등 야외로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면, 가족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우리 가족도 월 1회 정도 가족회의를 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가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사전에 가족 톡방에 올려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메모장에 적어둔 내용을 살펴보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흔적이 있다.

가족이 함께 음식 먹는 걸 좋아해서, 늦은 시간 먹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9시 이후 음식 먹는 것을 자제하자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커서 핸드폰을 다 갖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한다. 한번 빠지면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다. 그래서 취침 시간을 11시로 정하고 시간이 되면 핸드폰을 반납하자는 내용이 있다. 대신 각자 원하는 요일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자유시간은 허가받는 날로, 말 그대로 제한 없이 자유롭게 핸드폰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다. 대청소하자는 의견이 있어, 날짜를 정했고 그날 각자 해야 할 역할을 정하기도 했다.  

    

진지 모드로 갈 때는,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는 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막 이야기하는 것은, 더 좋지 않다고 얘기했다. 가족이다 보니, 배려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 서로 배려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당연한 것은 없으니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생활하자는 얘기도 있다. 가족회의 시간에 나누는 이런 얘기들을 통해 가족은 더욱 하나가 될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도 된다.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면서, 아픔은 안아주고 기쁨은 축하해주는 찐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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