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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Jun 17. 2021

4. 의심과 질문

대화

‘의심하는 것과 질문하는 것은 다르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오래전에 어디선가 본 문구다.

처음 이 문장을 읽고,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다를까?’ 의심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믿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의심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맞을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비 꽈서 받아들인다.    


질문하는 것은, 판단을 우선하지 않는다.

판단하기 전에,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물어본다. 의문점을 해결함으로써, 믿음으로 가까워지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의심하면서 질문하면 상대방은 금방 알아차린다.    

 

아이에게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의심하지 말고 질문을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의심하면서 아이를 닦달한다.

길거리에서 한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 “아니야!”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엄마는 “그렇다는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었지만, 어렵지 않게,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좋지 않은 이야기로 예상된다. 엄마는 아이에게 그 말에 대해 추궁한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엄마는, 아이가 아니라고 호소하지만, 아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사실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음을 추측하면 이렇다.

엄마는 누군가에게서 아이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내 아이의 안 좋은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한테서 듣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다. 아이에 대한 안 좋은 말보다,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했다는 것에 더 화가 난다. 그 마음에, 오히려 아이에게 더 윽박지르게 된다. 속상함을 아이에게 푸는 거다.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당황스럽고 억울하다.     


엄마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아이에게 의심이 아닌 질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거다. 아이의 처지에서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상황은 사실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는 엄마의 질문에서, 자신을 믿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서로가 신뢰의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안 좋은 상황도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다.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사장이 거래처 사람에게 직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추궁하면, 직원은 설 곳이 없어진다. 설사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변명하려 든다. 더 좋지 않은 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장에 대한 불신이다. 이유를 살피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에 흥분하고 의심할 것이 아니라, 이유를 살펴야 한다.      


집에 아끼는 물건이 안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아이에게 묻는다. “네가 가져갔니?”이건 의심이다. “혹시 물건 못 봤니?”이건 질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전자의 질문을 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질문한 사람은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질문할 때, 그 내용에 의심이 묻어나진 않는지, 생각해 보고 건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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