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확신

by 청리성 김작가

『직접 경험으로 얻는 마음과 온전히 이해될 때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믿음 』


20대 후반에 들었던, 한 강사의 강연 내용이 떠오른다.

꿈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의 사업은 점점 더 번창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사업가도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경제적 자유와 시간의 자유를 얻기 위해 겪었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보다,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에 더 마음이 쏠렸다. 경제적이든 시간적이든 거의 바닥이었던 시절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적 성장이 덜 된 상태라 부러움을 더 크게 느꼈다.


사업가가 얘기했던 꿈 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였는데, 아직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자신에게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이 아들이 어느 날, “아빠 돌고래는 어떻게 생겼어?”라고 질문했다고 가정했다. 자신은 이때,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는, 동물 그림이 그려진 책을 펼쳐서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하기 싫다고 했다. 평면으로 된 사진은 살아있는 돌고래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수족관에 가는 것도 싫다고 했다.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는 살아있는 돌고래는 맞지만, 커다란 수조에 갇혀 있어, 돌고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자신은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돌고래가 보고 싶다는 아들에게 “그래? 그럼 가자!” 짐을 챙겨 태평양으로 날아갈 거라고 했다. 가서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갈 거라고 했다. 배를 타고 바다 위를 가르며 주변을 살펴볼 거라고 했다. 어느 순간, 돌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오르면 아들에게 이렇게 외칠 거라고 했다. “아들! 저게 돌고래야!”


아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멘트에 가슴이 찌릿했다.

이 아들은 돌고래에 대한 기억을 또렷하게 가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노력과 추억은 덤으로 얻은 선물이 된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매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돌고래 하나 보자고, 큰 비용과 시간을 쓰는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면서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일부인데, 전부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돌고래가 진짜 살아있는 모습인데, 책이나 수족관에서 본 모습으로 돌고래를 정의하는 것과 같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정말 확실한지는, 직접 보거나 듣거나 만져보거나 맡아봐야 한다. 어설프게 안다고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다면, 직접 경험하는 것이 확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어설프게 알거나 느끼면서 확신한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제대로 알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확신을 얻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알고 싶은 건 알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이 비웃거나 면박을 당할까 봐 걱정되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속으로, 자신이 말하지 못한 말을 대신한 용기를 부러워할 수도 있고 고마워할 수도 있다. 어설프게 알았으면서 아는 척하면, 그 피해를 본인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될 수도 있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는, 직장 상사의 지시를 받을 때이다.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상사라면 더욱 그렇다. 상사가 지시했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 소리 들을까 봐 알았다고 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머리를 쥐어짜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이해되진 않는다. ‘맞겠지?’라는 추측으로 결과를 가져가지만, 돌아오는 건 큰 호통과 질책뿐이다. 지시를 받을 때 그것도 이해 못 하냐며 한 소리 듣는 것과 잘못된 결과를 가져가 호통과 질책을 받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지는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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