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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Aug 24. 2021

159. 보배

『‘왜’와 ‘어떻게’ 다음에, ‘무엇’이 배치되어야 완성되는 것』     


인턴 직원이 있었다.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4개월가량 근무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휴학한 상태였는데, 관심 있는 일이라 경험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복학을 미룰 수 없어 그만두게 되었다. 함께 인턴을 시작한 친구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친구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어, 이번 달까지 근무한다. 바로 복학하지는 않는 것 같고,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인원보다 많은 업무 일정이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 더 있었으면 했지만, 상황이 더는 그럴 수 없다.     

 

계약서를 작성했을 때가 떠올랐다.

눈은 말똥말똥했고, 대답 소리는 또렷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자세는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설렘이 온몸에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첫 주말 출장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 뒷모습을 보니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있었다. 눈은 반쯤 풀려있었고, 얼굴색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둘 다 그랬다. 이후에는 내근만 시키고 출장을 보내진 않았다.     


내근업무는 잘 수행했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라 업무 이해력이 좋았고, 수행 속도도 빨랐다. 결과물도 좋았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성과를 내는 건 아니다. 힘들거나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도 있고, 거래처로부터 잦은 클레임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만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무 마지막 날, 송별의 의미로 점심 식사를 같이했다.

음식을 가릴 줄 알았는데,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는 말도 건넸다. 밥만 먹기 아쉬워, 카페에서 차를 한잔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 달 근무가 남은 친구한테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 질문을 했다.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 따려고 하는 자격증의 가지 수가 꽤 됐다. 그걸 다 따서 뭘 할 건지 묻자, 목적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자격증이 많이 있으면 뭘 해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이유였다.

목적이 있는 준비가 아닌, 일단 하고 보자는 준비였다. 예전에도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말만 듣고, 남들이 하는 건, 다하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무엇을 할지 목표를 정하진 않고,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이, 서글프게 들렸다. 막연한 마음으로 보내는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어떻게 꿸지 생각하지 않고 막 집어넣으면, 보배가 되지 않는다. 그냥 줄에 끼워진 구슬 모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구슬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구슬을 많이 가지고 있으려는 욕심으로 보배를 만들긴 어렵다. 마음에 위안만 될 뿐이다. 정작 필요한 구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위안은 불안으로 바뀐다.     


보배를 만드는 건, 많은 구슬이 아니다.

필요한 구슬이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어야 보배가 된다. 보배로 만들기 위해, 어떤 구슬을 어떻게 배치할지 구상하고 꿰어야 한다. 나를 보배로 만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만들고 싶은지 그리고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슨 구술을 모을지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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