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마음의 소리

by 청리성 김작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집중하고 들어야 할, 말씀의 울림 』


‘마음의 소리’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로 마음의 소리다. 듣는 순간 확신이 들 때가 있는가 하면, 긴가민가할 때도 있다. 한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검은 개’와 ‘하얀 개’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 때, 두 개의 싸움이 시작된다. 검은 개는 나쁜 편이고 하얀 개는 좋은 편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쪽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한 편만 이기는 건 아니다.


누가 이길까?

스님이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답을 내놓지 못했다. 스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먹이를 많이 준 놈이 이긴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 먹이를 많이 준 놈이 힘이 좋을 것이고 힘이 좋으면 이길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어렵게 여기는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보니,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나는 누구에게 더 많은 먹이를 줄까?

항상 같지는 않다. 때로는 검은 개한테 많이 줄 때가 있고 때로는 하얀 개한테 많이 줄 때가 있다. 내가 처한 상황과 여러 가지 환경들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당연, 하얀 개를 배불리 먹이게 된다.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다. 끼어드는 차를 이해가 되고 칭얼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그다지 나쁘지 않게 들린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며, 웃어넘기기까지 할 수 있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언짢은 일이 있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당연, 검은 개를 배불리 먹이게 된다. 모든 것이 불만이 된다.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의 미소도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성가시다. 모든 것이 귀찮고 누구의 어떤 말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리기도 한다. 우발적인 사건의 배경을 보면, 욱하는 심정이 대부분이라는 것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순 없다.

성경에서 하느님도 분노하실 때가 있는데, 사람이 어찌 가능할 수 있겠는가! 확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효과가 좋은 노력은, 검은 개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을 중단하는 일이다. 하얀 개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은 그렇지 않은데, 검은 개에게 먹이 주는 행동은 금방 습관이 된다.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다. 그래서 검은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멈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검은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은 이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일까?’ 한 10초만 생각해 본다. 내가 지금 화를 내서 내가 지금 짜증을 부려서 내가 지금 싸움을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 기분을 풀기 위함인가 아니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함인가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뭐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래도 된다.

마음에 쌓아두면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른 시일 안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날은 넘기지 않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말씀하셨다. “해를 넘기기 전에 화해하십시오. 매일 그렇게 하십시오.”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마음의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나를 살펴야 한다. 내가 했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살펴야 한다. 잘한 일은 더욱 그렇게 하도록 다짐하고 잘못한 일을 다시 그러지 않기를 다짐해야 한다.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면, 미처 생각지 못한 일도 생각의 수면 위로 올라온다. 내가 들어야 할 마음의 소리는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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