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만의 중심 』
어느덧, 첫째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꼬맹이 같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불쑥 커버린 아이를 보면 대견하다는 마음이 든다. 가끔은 아이가 무엇을 먹을 때나 앉아있을 때 물끄러미 쳐다보게 될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냐는 생각에서다. 인지하지 못한 채 흘려버리는 세월의 속도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듯 금세 지나가 버리는 인생을 후회 없이, 아니 최소한의 후회로 돌이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쉽진 않지만.
2학기가 되니 결정할 일이 생겼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문제 다음으로 어렵다는, 문과냐 이과냐.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문과를 택했었다. 하고 싶은 거나 잘 할 수 있는 방향이 문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을 놓고 고민했던 친구들이나 고민하는 아이들을 사실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결정하면, 자연스레 어떤 과를 선택할지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또 하나의 기준 때문이다.
취업이다. 어느 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취업이 잘 되냐 그렇지 않으냐가 판가름 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 어떤 순위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앞선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좀 그랬다.
첫째도 고민했다.
하고 싶은 직업이 명확했기 때문에 문과였지만, 고민했다.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의 의견은 달랐기 때문이다. 취업의 폭을 넓히려면 이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그렇게 유도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우선이 아니라 취업이 우선이었다. 선택의 폭이 넓으면, 일단 좋다는 논리다. 나는 이 기준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벌써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첫째에게 원하는 대로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의 기준이 단지 취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는 말만 거들었다.
첫째는 문과를 선택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방향으로 선택했다. 결정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 걱정했지만, 나름대로 소신 있게, 자신의 기준에 맞게 선택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 겉모습만 성장한 줄 알았는데, 내면도 함께 성장했다는 사실이 흐뭇했다.
모든 것에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이 내 생각일 때도 타인의 생각일 때도 있다.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대부분의 선택이 누군가의 영향 때문이라면,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판단 기준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야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 앞에서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향 때문인가?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