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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Dec 10. 2021

232. 짐

『인생에서 꼭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     


매년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가족이나 주변에 돌아가신 분들도 기억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하고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떠나는 건, 어찌 보면 축복이다. 하지만 병이나 사고 그밖에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이 있고, 자유와 평화를 유해 목숨을 바친 영혼들도 있다. 그분들을 위한 마음 깊은 기도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병으로 고통 중에 있거나 삶이 너무 힘든 사람은, 차라지 죽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고통과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삶 중간중간에 너무 버거울 때가 있다. 지나고 나면 그리 버거운 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왜 그렇게 버겁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미 지나고 나서 그런지 아니면, 지나면서 이겨낼 힘이 생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도 있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살아있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했던 누군가는 이 말을 몸소 실천했다.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이다. 그는 궁형(宮刑)이라는 고통과 수모를 당했지만 살아냈고, 그렇게 자신이 목표한 ‘사기’를 완성했다. 지독하다는 수식어도 그의 의지와 집념을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다.”

이 문장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원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하나의 의미는, 살아 있는 사람이 품고 있어야 할 마음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는 하루였지만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는 우리는 그 하루를 얻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원래 오는 하루인데 뭘 그렇게 유난 떠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 문장을 천천히 읽어보자.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다.” 조금은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가? 내가 이 문장을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다. 이 문장을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몇 번을 되뇌면서 생각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매일 맞이하는 하루가, 그냥 하루가 아니었다.

소중한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작지만,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내 등 뒤에 붙었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오늘은 내 삶일 수도 있지만, 그토록 원하던 누군가의 삶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그냥 그냥 왔다가 가버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솜털같이 가벼운 하루의 무게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마음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았겠건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져 내던지고 싶을 때는,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내던지면서 포기하지 말고, 잠시 내려놓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내던질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기에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꿈을 위해서거나 아니면, 먹고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건, 잠시 내려놓는 거다. 그리고 살펴보는 거다.     

 

불필요한 것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덜어내야 한다.

굳이 지금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덜어내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말고, 힘들 땐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짊어지자. 학교 다닐 때, 책가방에 많은 물건을 넣어서 다닌 기억이 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몰라 챙기다 보니, 가방에 한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한 달 이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가지고 다녔다. 무겁고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다. 내가 꼭 짊어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피는 시간을 통해 구분해낼 수 있다. 새벽 고요한 시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 보자. 의도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있으면 내 머릿속이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나 사람이 떠오른다. 흘러가는 물처럼 그렇게 그냥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도록 두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떠오른다.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생각지 못한 지혜일 수도 있다. 그렇게 짐을 짊어지는, 슬기로운 방법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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