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블록

by 청리성 김작가
『나를 깨우는, 마음속에 조각 하나하나』

아이들이 블록을 정성스레 쌓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블록뿐만 아니라 많은 조각을 조립해서 커다란 모형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취학 전에서 초등 저학년까지는 간혹 이런 모습을 봤다. 평소에는 까불까불하던 아이들의 표정과 모습이 그처럼 진지할 때가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부모는 이런 생각을 한다. ‘공부를 저렇게 좀 했으면….’


블록 쌓기는 지금 아이들 세대에 갑자기 생겨난 놀이가 아니다.

지금의 어른들도 어릴 때 많이 했던 놀이다. 부단히도 쌓았다가 허물고 만들었다가 해체했다. 위로 쌓는 블록 말고도 옆으로 늘어트리는 도미노 게임도 있다. 한참 집중해서 쌓고 있는데 누군가 잘못 건드려 와르르 넘어질 때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중간중간 블록을 빼서, 혹시 넘어지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를 보자는 전략을 짜기도 했다.


희한한 건 같은 놀이지만, 바라보는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른이 돼서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무너트릴 거 뭐 그렇게 애를 쓰나?’ 우리가 이 놀이를 할 때, 우리를 바라보던 어른들도 그랬겠지? 왜 어른이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다양한 표현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블록이 밥 먹여주냐?”

실용성을 말한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뭔지,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지를 따지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그 어떤 생각이나 행동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린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라도 당장에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없다면,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것이, 최대의 가치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먹고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기에는, 무너지는 블록과 쓰러져가는 도미노보다,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오지 않을까? 최선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것도 없는 벌판을 마주한다면 어떨까? 내가 선택하고 내 의지대로 달렸다면 허무함의 크기는 그나마 적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보다는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하고 있다.


마음 창고 어딘가에, 먼지를 맞으며 방치된 나만의 블록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어릴 적에 가졌던 소망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것에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밀어두고 밀어놨던 그것을 꺼내서 하나씩 쌓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지금 상황에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 치지 말고, 그 말도 안 되는 상자를 일단 꺼내보자.


쌓여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그냥 둬도 된다.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오갈 때 한 번씩 쳐다보자. 가끔 시간이 나거나 마음이 동할 때 상자를 열어보고, 또 여력이 된다면 블록을 하나씩 꺼내보고 그러다가 하나씩 쌓아보자. 그렇게 쌓은, 밥 먹여주지 않는 블록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왜냐면 아무런 대가 없이 온전히 나를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가슴 벅찼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어떤 대가를 위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된 행동이지 않았나? 그것이 가슴을 뛰게 했고 살아내게 했다. 그 순간을 너무 멀리했기에 감각이 둔해진 것뿐이지, 잊힌 건 아니다. 그 감각을 다시 깨워보면 좋겠다. 그렇게 가슴을 뛰게 하고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나만의 블록 쌓기를 찾는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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