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준으로만 바라볼 때, 섣부른 판단을 하도록 빌미를 제공하는 것』
30대 초중반쯤.
그러니까 사회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야 할 때를 말한다. 그때가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흐르고 직책이 달라지면서, 그에 따른 또 다른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지만, 그때의 치열함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그때는 덜 여물었다고 해야 하나? 요령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암튼, 밤에 죽고 아침에 새롭게 태어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부딪혔다.
재고 따지기보다 그냥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했다. 좋아서 하기도 했고, 해야 하니까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닥치는 대로 했다. 그렇게 달려들고 부딪혔으니 몸과 마음에 스크래치가 안 날 수가 없었다. 퇴근하는 길은, 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버스에 실려 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창가에 앉을 때는, 머리를 유리에 기대고 온몸에 힘을 뺐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물끄러미 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탁 트인 길을 달릴 때는, 답답했던 마음도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을 쐬고 싶을 때는,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너무 강해 호흡이 곤란할 때도 있었지만, 신선한 공기가 몽롱했던 정신을 깨웠다.
여름에는, 넓은 공터에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앉아서 생맥주를 마시는데, 왜 그리 부러웠던지. 그때는 술도 잘 마시지 못했던 때라, 술 마시는 게 부러운 게 아니었다. 여유 있게 앉아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저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시내를 벗어나서 가로수가 늘어져 있는 길을 지날 때가 있었다.
멍하니 가로수들을 보고 있으면, 버스의 속도에 맞춰 내 뒤로 넘어갔다. 하나둘 숫자를 세다가 속도가 빨라지면, 세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빨리도 넘어가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무가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버스가 앞으로 가고 있는 거지. 내가 버스에 타고 있으니, 나무가 넘어가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나무가 빨리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가 빨리 달리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사람이 변했다고 말할 때가 있다.
누구나 해봤을 말이고, 들었을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변했다는 것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말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정의(定義)한 모습에서,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변했다고 말한다. 좋게 변했거나 나쁘게 변했거나. 변했다는 말은 거의 후자일 때 표현하지만 말이다.
상대방은 가만히 서 있는데, 지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유가 뭘까?
상대방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된다. 가로수가 뒤로 가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정작 움직이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무언가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보이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면서 비꽈서 바라본다.
섣부른 판단과 단정을 주의해야 한다.
오해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잘못된 해석은 여기서 시작된다. 시작이 틀어지니 결과가 옳게 나올 리가 없다. 잘못된 결과의 원인이, 내가 확신하고 있는 타인이 아닐 수 있다. 내가 그 원인일 수 있다. 내가 움직이고 있는지 상대방이 움직이고 있는지 명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거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