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해야 할 때 선택하고, 선택한 길에 집중하면 좋은 때가 되는 것』
“있을 때 잘해!”
가끔, 이렇게 말하기도 듣기도 하는 말이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으면 아쉬움이나 필요성을 느낄 테니, 있을 때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일종에 경고(?) 메시지다. 사실, 그럴 거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아무래도 마음에 강력하게 가닿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쩌면 아직 함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의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교만일 수도 있겠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다.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역할이 그다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없으면 허전하거나 필요성을 크게 느낄 때가 있다. 바로 느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깊이가 더 깊어지는 사람도 있다. 더 실력 있고 더 많은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전에 있던 사람에서 느끼지 못하는 허전함이 있다. 작은 창틈으로 불어오는 바람만큼,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답답하다고 느낄 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 것은 사람에게만 해당할까?
모든 문제도 그렇고 모든 기회도 사람에게서 오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전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기(時機)’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씀이 그렇다. 지금은 죽는 순간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니, 딱히 시기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시기가 지나면 할 수 없는 것도 분명 있다. 돌잔치를 비롯한 나이에 맞게 치러지는 잔치가 그렇다. 한두 해가 지나서 돌잔치를 한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지나가 버리는 기회도 있다.
언제든 기회를 만나기도 하고 만들 수도 있지만, 지금 아니면 잡을 수 없는 기회도 있다. 그래서 기회는 앞머리가 많고 뒷머리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에게 다가올 때는 잡을 수 있는 머리가 있지만, 나를 지나고 나서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 있는 머리가 없다는 말이다.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잡으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물리적으로든 그 외에 다른 이유에서든 말이다.
기회가 널려있는 세상이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오면서 기회도 많아졌다. ‘어, 어, 어’하다가 놓친 기회를 떠올리면, 한둘쯤은 다 있으리라 생각된다. 너무 새로워서 이해가 되질 않았고 당연히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잘한 선택과 그렇지 못한 선택은, 어쨌든 결과론이다. 결과가 좋았는데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다면 잘못한 선택이고, 그 반대라면 좋은 선택이 된다.
그럼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결과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데, 그전에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까? 여기서 선택의 기준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하는데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도 없고, 당장 알 수도 없다. 따라서 후회할지 안 할지가 선택에 기준이 돼야 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후회할지 안 할지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결정한 선택에 집중하는 거다.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면서 뒤돌아보지 말고,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어쩌면 결과가 좋지 않은 이유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택하기 전까지는 선택에 집중해야겠지만, 선택한 다음에는 선택한 길에 집중해야 한다. 결과는 운이 아니라, 내 선택과 집중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