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 몫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받아야 할 것만 신경 써야 하는 것으로, 타인의 것을 신경 쓰면 내 것이 작게 느껴지는 것


프로야구에는 훈훈한(?) 규정이 있다.

우승한 팀 모든 선수에게 우승 반지를 준다. 벤치에 앉아만 있던 선수도 포함해서 말이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주전으로 뛴 선수뿐만 아니라, 등록된 선수 모두에게 우승에 대한 증표를 부여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벤치에 앉아만 있던 선수는, 우승 반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쁠까? 아니면 찝찝할까? 주전급은 아니더라도, 우승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에 짐이 덜할 거다. 하지만 경기장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선수라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선수는 우승 반지보다 경기장에서 뛰는 것을 더 바란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따라서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가 받은 우승 반지는 거저 받은 게 아니다. 뛰지 못한 선수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 위한, 최소한에 예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선수들은 우승 반지보다 한 타석이라도 서봤으면 하고 바랐을 가능성이 크다. 진짜 선수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주전 선수들은 이 선수들이 받는 우승 반지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 경기를 뛴 힘듦과 어려움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마음이 더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게 무리일 수는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된다. 이렇듯 각자가 짊어진 무게에 대해 받은 몫만 바라봐야지, 타인의 몫을 쳐다보는 건 옳지 않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대체로 연봉이라고 해서, 일 년에 받을 총 금액을 합의하고 계약서를 작성한다.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건, 내가 일한 대가로 받는 금액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해야 할 상황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계약을 하고 연봉을 받고 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다. 그러면 화가 난다. 회사는 협의한 연봉을 제때 주고 있음에도, 그 사람이 더 받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왜 그럴까?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 기준으로 바라보고 내가 이 정도니까 저 사람도 이 정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더 낮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높다는 것을 아는 순간, 갑자기 자기가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약속한 금액을 받고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를 그 사람이 감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결과만 가지고 이렇다저렇다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자신이 그 무게를 짊어질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더욱 그렇다. 각자가 짊어진 무게가 있고 그 무게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연봉 이상의 배움을 얻고 경험을 한다면, 그 또한 연봉 이상에 가치를 얻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이치는, 산수가 아니다.

‘1+1’ 가 무조건 ‘2’는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더 낮을 수도 있고 상상 이상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타인의 노력보다 덜하고 혜택을 받은 적도 분명 있다. 기억에서 잊은 것뿐이다. 내가 받은 건 쉽게 잊고 내가 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이 더 받은 건 오래 기억한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과 반대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괴로워하고 화를 참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잘 할 수 있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보상도 덜 받게 된다. 악순환이 벌어지는 거다. 내가 받아야 할 몫에 문제가 없다면 더는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주는 건 내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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