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끝까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기억
난센스 퀴즈 하나가 생각난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뭘까? 정답은, 그림자다.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기고, 큰 그림자에 가리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센스 퀴즈는 문제를 낸 사람이 답이라고 하면 답이니, 인정할 수밖에. 그리고 그리 크게 잘못된 말도 아니다. 그림자만큼 잘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없다. 아무리 뛰어난 경호원이라고 해도, 경호하는 사람의 그림자보다 더 잘 따라다닐 수는 없다. 아무튼. 문제를 이렇게 바꿔본다.
‘사람이 죽어도 따라다니는 것은?’
내가 만든 난센스 퀴즈다. 뭘까? 고개가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죽은 다음에도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소름 돋기도 할 거다. 이 또한 답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퀴즈를 낸 사람이 답이라고 하는 것이 답이니, 한번 생각해 보자. 힌트를 준다면, 속담 하나를 말해줄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느낌이 오는가? 사람이 이름을 남긴다는 것에 의미를 생각하면 된다.
발자국이다.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이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이면 그 위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가 처음 발자국을 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곳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남는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발자국이 남지만 죽어서도 발자국이 남는다. 발자국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다. 타인이 부르는 자신의 모습. 누군가의 이름을 들으면 단번에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런저런 사람이라는 인상이다. 그것이 곧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국이라 말할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기억해야 한다.
내 발자국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눈 위를 걸은 발자국은 눈이 녹거나 다른 사람들이 다니면 없어진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은 다음에도 그렇다. 기일이 되면 그 사람을 생각한다.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의 발자국을 통해 그 사람을 정의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이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타인에 눈치를 보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되짚어 보는 거다. 그렇게 할 때,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것이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일치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이 같으면 어떤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평생 나를 따라다닐 나의 발자국은 무엇인가?